박근혜 대통령이 10일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논란과 관련해 비교적 신속하게 유감을 표시한 것은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기문란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정원 증거조작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근 한달 만에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매우 유감스럽다"면서 철저한 수사를 통한 국민적 의혹 해소와 수사결과에 따른 조치 등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정치권에 극한 대립을 몰고 왔던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대응과는 다소 다르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정원 직원의 대규모 선거개입 트윗 글이 발견되고 야권의 공세가 이어져도 "재판 결과가 나온 뒤에 법에 따라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사과나 유감 표명을 요구하는 야권의 요구에 '수사 중이거나 재판중인 사건' 또는 '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 등의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그러나 이번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은 현 정부 들어 남재준 국정원장 체제에서 발생한 데다, 중국 정부가 문서가 위조라고 못박은 상황에서 증거조작 정황도 갈수록 뚜렷해져 방관적 자세로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특히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가 검찰 수사에서 문서 위조를 실토하고 자살을 시도한 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직접 상황 관리에 나설 필요를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사회 각 부문의 '비정상화의 정상화' 개혁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이 국정원의 비정상적 행태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경우 여론의 비판대상이 될 뿐 아니라 국정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 2년 차의 승부처로 꼽히는 6ㆍ4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상황도 박 대통령의 행보에 속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을 질질 끌다가 지방선거 목전에 관련 사실들이 폭로될 경우 청와대로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사안의 성격상 사법질서의 근간을 건드리는 일대 논란으로 확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유감 표명과 함께 철저한 진상 수사를 지시하며 진화에 나서기는 했으나 6ㆍ4 지방선거전이 불 붙기 전에 파장이 수그러들지는 미지수다. 야권은 특검 도입 요구 등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으나, 박 대통령은 일단 검찰 수사에 맡기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지난해 국정원 댓글 사건에 이어 또다시 정치권이 특검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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