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0일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서울시 공무원의 국가보안법 위반행위 사건과 관련해 증거자료의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일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정확하게 밝혀 더 이상 국민적 의혹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검찰은 이번 사건을 한 점 의혹도 남기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국정원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라며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진 지 근 한달 만에 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고 수사 결과에 따른 조치를 언급함에 따라 남재준 국정원장의 문책론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실체적 진실 파악이 우선"이라며 남 원장 문책 여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국정원의 증거 조작 정황이 속속 확인되고 있어 남 원장이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우성씨가 간첩 혐의로 기소된 것은 남 원장이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이지만, 국정원이 위조 논란에 휩싸인 문서를 입수한 시기는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로 남 원장 체제의 국정원이 한창 대공안보 드라이브를 걸 때다.
특히 주한 중국 대사관이 지난달 14일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아 법원에 제출한 문서 3건을 모두 위조라고 회신한 뒤에 보인 국정원의 행태는 상식 밖의 수준이고, 여기에는 남 원장의 역할과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정원이 증거조작 파문이 본격적으로 커진 뒤 자체 진상 규명을 통해 논란을 해소하기는커녕, 거짓 해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끊임없이 여론을 호도해왔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중국 대사관의 회신 이후에도 "위조가 아니다" "공식 외교라인으로 입수했다"는 등으로 변명하다 결국 9일 사과 성명을 내며"중국 협조자로부터 입수했고 우리도 당혹스럽다"며 발을 뺐다. 이마저도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가 검찰 조사에서 문서 위조를 실토하고 자살을 시도한 뒤에서야 떠밀리듯 나온 해명이다.
국정원의 계속된 여론 호도에 그간 여권은 '중국 정부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실체적 진실을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남 원장이 간첩사건 증거조작 여부를 몰랐다 하더라도 이 같은 2차 증거조작 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지휘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남 원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실제 문책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사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책임자 엄벌'은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사정권 이후에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정보기관의 사건조작은 심각한 권한 오용이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국기문란 행위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도 책임자인 남 원장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야권이 남 원장 해임을 거세게 몰아 붙이고 있고, 청와대와 여당도 코앞에 닥친 6ㆍ4 지방선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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