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 GS칼텍스 유조선 충돌사고로 원유가 유출된 5일 후 전남 여수 낙포동 지역의 대기 중 벤젠의 농도가 미국의 주민대피기준을 초과할 만큼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단체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달 5일 방제 작업이 진행 중인 여수 원유 유출 현장에서 대기 오염도를 측정하고, 지역 주민 35명을 대상으로 소변 검사를 통해 유기화합물 노출 정도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 발암 물질인 벤젠의 농도는 21.4~52.2ppb로 나타났다. 환경부 환경대기기준(1.5ppb)의 최고 35배다. 또 2013년 환경부 측정 당시 서울역의 벤젠 농도는 0.15ppb, 부산 연산동 0.06ppb, 광주 농성동 0.22ppb 등이었고, 가장 높은 울산에서도 1.41ppb였다.
우리나라는 따로 기준이 없지만 미국 기준으로는 주민을 대피해야 할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아칸소주 메이플라워시에서 송유관이 파열됐을 때 주정부는 대피 기준인 50ppb가 넘었다며 22가구를 대피시켰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측정팀장은 “사고 발생 후 5일이나 지났지만 휘발성이 강한 벤젠의 대기 중 농도가 최고 52.2ppb에 달했다는 건 사고 당시에는 훨씬 농도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소변 검사에선 신경독성물질 크실렌(Methyl Hippuric acid)은 평균 56mg/g Creati.가 검출됐다. 환경부가 2012년 발표한 한국인 소변 내 크실렌 평균 농도는 0.403mg/g Creati.로 사고 지역 주민에게 140배가 검출된 것이다. 크실렌은 호흡기 장애나 피부질환을 유발할 수 있고 과도하게 노출되면 폐수종이 생길 수도 있다.
김원 팀장은 “벤젠 등 유기화합물은 사고 발생 8시간 이내에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고 지역 주민들 대부분이 고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며 “사전조사를 실시해 먼저 주민들을 대피시킨 후 방제작업을 실시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재순 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화학물질 유출 사고에 대비해 매뉴얼을 마련하고, 무엇보다 주민들을 초기 대피시키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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