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에게 ‘그 너머’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대구 노숙인 쉼터
그 집에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다. 흔히 자본주의 실패의 표상으로 여기는 노숙자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곳에 살고 있다. 어렵게 말할 필요 없이 대구역 지하도를 걷다보면 그늘진 건물구석에서 신문지 덮고 자는 노숙자들이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의지도 없이 길거리를 떠돈다는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쉼터에서 원목소품을 만드는 공방을 운영한단다. 늘품공방은 동대구역 앞 유흥업소와 원룸이 빽빽하게 공존하는 골목길에 있었다. 그리 높은 수준의 품질을 기대하지 않았던 내 생각 역시 또 하나의 편견이었다.
‘그래도 다시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의 힘
“여기 있는 줄 알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많이 놀라실 텐데… 그래도 다시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으니까!”
노숙생활을 하던 A씨는 늘품공방에서 우드펜(원목을 다듬어 대로 삼은 볼펜)을 만들고 있다. 그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이런 기술을 배웠다. 공방이 만들어진 게 이제 7개월이니 배운 시간을 합쳐도 제품을 만든 기간은 5개월 남짓이다. “이게 제가 만든 겁니다. 이건 밤나무로, 이건 편백나무…”라며 자신 있게 상품을 내보이는데 매장에서 팔리는 것과 육안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가 직접 나무 깎는 기계를 돌리는 것을 보니 오히려 훨씬 고급으로 느껴졌다. A씨는 늘품공방에서 우드펜을 만들며 자부심을 되찾았다. 그가 만든 펜을 사람들이 칭찬할 때마다 보람이 샘솟고 이 일로 자신도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단다. 늘품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의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더 이상 노숙자 A가 아닌 미래의 수공예장인이다.
사회적기업 늘품은 나무를 가지고 볼펜, 오르골, 액자, 명함꽂이 등 소품을 만드는 공방이다. 이곳은 대표 임정만 씨와 동대구노숙인쉼터 소장 김동옥 씨, 홍보•영업 팀장 이용열 씨 그리고 노숙자 출신 기술자 4명이 꾸려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대구시로부터 안전행정부 특별교부금 1억을 지원받아 동대구노숙인쉼터 지하에 둥지를 틀었다. 건물공사와 기술교육 시간 4개월을 빼면 제품을 만든 건 이제 겨우 3달째. 하지만 늘품의 수공예 원목제품은 그 품질과 상품성을 인정받아 벌써 여러 곳에서 발주가 들어오고 있다. 취재 당일에도 펜과 메모지등을 담을 수 있는 이동식 트레이를 기일 내에 납품하기 위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올해로 7년째 노숙인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동옥 소장. 그는 지난 3년 동안 5번이나 이삿짐을 꾸렸다. 건물주들이 쉼터가 자신의 건물에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 드디어 법인소유(엄밀히 말하면 은행소유라고 강조하는)의 동대구노숙인쉼터에 보금자리를 꾸리면서 새로운 도전을 계획했다.
“자활사업의 롤모델 될 것” 강한 의지
“이제 떠돌지 않고 안정됐으니 노숙자들에게 의식주 그 너머 단계를 제시하고 싶었어요.”
사실 김 소장은 사회적기업 실패 유경험자다. 하루 벌어서 그 돈을 다 쓸 때까지 술을 사먹는 것을 반복하는 노숙인들의 습관을 고려하지 못한 것을 실패 원인으로 꼽았다. 이곳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작을 함께 했지만 4명만이 남았다.
“지금 남아계신 분들은 정말… 제가 희망을 볼 수 있게 해주셨어요. 월급을 주기 힘든 상황이 됐을 때도 가능성을 보고 같이 가겠다 하시더라구요. 이제는 관리해야할 노숙자가 아닌 동료로서 의지하고 있어요.”
그는 늘품을 성공시켜 노숙인 자활사업의 롤모델을 만들고 싶다. 김 소장은 “우리가 잘 돼서 단순히 의식주 지원이 아니라 노숙자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의 중요성을 알린다면 많은 길거리 노숙자들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을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소장이 공간을 만들었다면 임정만 늘품공방 대표는 그 속을 채워 넣은 사람이다. 임 대표는 실내인테리어 경험을 살려 쉼터 지하를 공방으로 변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공방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우드펜, 원목블루투스스피커, 돌리면 열리는 나무필통, 오르골, 삼단액자 등 다양한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공방은 수예품이라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만큼 단체주문이 필요합니다 로고를 새기거나 주문에 따라 구성을 바꾸는 등 해당 단체의 시그니처 제품으로 손색 없죠.”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건 독도관련 상품들이다. 임 대표는 상품을 개발하던 중 ‘독도’가 떠올랐고 이를 홍보하는 제품들이 많지 않음을 깨달고 여러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어냈다. 독도가 얹힌 보물상자는 아리랑을 연주하는 오르골, 뚜껑을 열면 시계가 나오는 독도 조각 등. 지난해 12월 안용복재단에 제품소개서를 보내자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독도 관련 기념품 중 이만한 수준을 가진 제품이 드물다는 평이다. 임 대표는 기쁘지만 씁쓸하다.
“오르골 핵심부품은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데 독도를 새기면서 일본산을 쓸 수 없어 중국에서 사옵니다.” 고민을 말하지만 얼른 돈을 벌어 그 부품까지 늘품에서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긍정적인 그다.
품질•상품성 인정 받아…청와대 입점이 꿈
‘없어도 상품만은 고품격’을 추구하는 늘품 공방 사람들. 그들의 다음 목표는 ‘청와대 기념품점’이다. 이용열 팀장은 “시중에 나온 우드펜들과 비교 테스트를 충분히 했습니다. 우리 제품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라며 “현재는 외국 브랜드의 우드펜이 청와대 기념품점에 들어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늘품의 우드펜이, 아니 또 다른 상품들이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시대 새로운 멘토로 떠오른 한 철학자는 노숙인을 두고 ‘수치심을 잃었다’고 평했다가 뜨거운 논란의 가운데 섰다. 어쩌면 그들은 수치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희망의 날개가 꺾여 무뎌진 게 아닐까. 좌절감에 무력해진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늘품공방에는 잃었던 희망을 찾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웃이 있다. 아래로의 삶이 위로 역전되는 이 공방의 주인은 혼자만이 아니다. 그들은 의미 있는 삶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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