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전자상가의 서쪽 끝 의림빌딩 옆 공터에는 2주 가량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건물에 한국마사회 화상경마장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원회의 농성 천막과 입점을 찬성하는 상인연합회의 천막이 10여㎝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갈등이 격화해 충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24일. 화상경마장 입점 찬성 집회를 연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주민대책위의 천막농성장 바로 옆에 자신들의 천막을 세웠다. 대책위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으나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아 결국 찬반 천막농성장이 나란히 세워지게 됐다.
용산 화상경마장 입점 반대 주민대책위의 정방 공동대표는 "지난 1월 우리는 경찰의 저지로 밤 늦게야 간신히 천막을 쳤는데, 이번에는 항의를 해도 경찰이 묵묵부답 지켜보기만 했다"며 "경찰이 상인연합회 쪽에 서서 불공정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농성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단체의 집회나 농성은 불허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경찰은 주민대책위의 농성장에서 열리는 상인연합회의 집회와 농성을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경찰은 당시 찬성과 반대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공평하게 대응하려고 집회만 허가해줬는데 상인연합회 측에서 갑자기 천막을 설치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천막을 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제지하려 했지만 상인연합회 회원들이 '대책위 천막도 있는데 왜 우리 것만 철거하느냐'며 강하게 항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상인연합회의 주성모 대표는 "마사회 건물 앞에 천막을 치는 것은 마사회가 거부해 구청 땅인 그곳에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며 "우리 의사를 표현하려는 것이지 대책위와 충돌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양측의 충돌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순찰대와 순찰차를 배치해놓고 있다.
주민대책위는 이와 함께 마사회가 상인연합회를 도와 주민간 갈등을 부추긴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 대표는 "우리 천막을 가리기 위해 바로 옆에 주차해놨던 마사회 트럭이 상인연합회에서 천막을 세울 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전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시민단체들은 마사회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마사회가 화상경마장 입점 의지를 굽히지 않아 주민들간 갈등까지 낳았다"면서 "이제 고집을 꺾고 이 건물을 문화시설로 전환하는 등 주민 모두를 위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10일 주민대책위와 상인연합회 관계자를 불러 집회 일정이 겹치지 않게 조정할 예정이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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