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인사시스템 폐쇄적임직원들 자신의 서열 몰라 승진 안 되면 힘없다고 생각온갖 청탁과 투서 난무… 비리·부패도 거기부터 출발행장 결재서류 사전 검사일상감사는 사전검사가 정상… 그걸 이상하다고 하니 황당허튼 지적이라면 무시하면 돼임영록 회장 복심 시각은회장-행장 관계 나쁘지 않아길들이기란 말은 완전히 소설
올 초 취임한 정병기(59ㆍ사진) 국민은행 감사의 파격 행보에 금융권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은행 정기인사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은행장 결재 서류를 사전에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대부분 감사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3년 임기를 채우고 나가는 은행들에겐 꽤 충격적인 뉴스다. '월권'이니 '반란'이니 하는 평가들이 쏟아지는가 하면, 은행을 견제하기 위한 임영록 KB금융회장의 복심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7일 오전 여의도 국민은행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정 감사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감사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은행권의 잘못된 관행을 확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다.
- 최근 은행장 결재 서류를 사전에 모두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일상 업무에 대해 사전에 감사하는 것이 감사의 역할 아닌가. 왜 유독 은행에서만 그동안 사후감사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조직에서 감사를 배제하려는 문화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감사는 "사후 감사는 은행장이 승인을 한 후에 감사가 어떻게 뒤집겠느냐는 의도가 깔려있는 제도"라며 "이런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사전검사를 늘리면 은행장의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지 않나.
"일상감사는 사전검사가 정상이다. 그걸 이상하다고 하는 은행권 관행이 너무 황당하다. 감사가 먼저 위법 부당한 사항을 검토하고 이견을 지적하면 은행장이 결재 과정에서 이를 수정할 것을 지시하면 된다. 만약 감사가 터무니없는 지적을 했다면 은행장이 무시하면 그만 아니냐."
그는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지금까지 '부서장→은행장→감사→시행'이던 결재 과정을 '부서장→감사→은행장→시행'으로 바꾼 것일 뿐 감사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새롭게 감사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정기인사에 제동을 걸어서 노조와 갈등이 있었는데.
"은행권 인사는 너무 폐쇄적이어서 CEO의 권한이지만 들여보겠다고 한 거다. 우리나라 감사 역사상 최초로 인사특검에 들어갔다. 인사 폐쇄성을 없애고 투명하고 공정한 원칙을 세워보겠다는 것이다."
정 감사는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도쿄지점 부당대출 및 비자금 조성 사건 등 국민은행의 각종 비리도 폐쇄적인 인사가 낳은 병폐라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은행에서도 인사하려고 했더니 온갖 청탁이 들어오고 투서가 난무하더라"며 "정치적인 힘을 끌어서라도 올라가겠다는 것인데, 그러면 조직이 무너진다"고 했다.
-인사특검의 방향은 무엇인가.
"국민은행 임직원이 2만4,000명 정도인데 자신의 서열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인사 기준이 모호하니 인사철만 되면 불안하고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것이다. 승진이 안 되면 힘이 없어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패도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실력으로 지점장, 본부장이 되는 건전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
정 감사는 재무부 은행제도과를 거쳐 재정경제부 회계제도과장, 기획재정부 국유재산과장ㆍ감사담당관, 은행연합회 감사를 지낸 관료 출신이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은행제도과장 당시 사무관으로 함께 일했다. 그를 국민은행 감사로 추천한 사람도 임 회장이다.
-파격 행보가 임 회장의 복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시각도 많다.
"임 회장이 국민은행 감사로 추천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행보는 임 회장과는 전혀 무관하다. 특히 임 회장이 나를 통해 이건호 국민은행장 길 들이기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완전 소설일 뿐이다. 두 사람 관계는 밖에서 보는 것처럼 나쁘지 않다."
-앞으로 목표는.
"내부통제 시스템, 특히 인사시스템을 확립할 것이다. 외풍에 의해 인사가 이뤄지는 폐쇄적인 상황을 바로잡고 싶다. 또 그것이 전 은행권에 확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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