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이자 세계 2위 완성차 메이커인 제너럴모터스(GM)가 위기를 맞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받았던 구제금융을 지난해 모두 상환, 빠르게 재기를 모색했지만 최근 실적악화에다 글로벌 사업철수, 여기에 대규모 리콜과 뒤이어 결함 은폐논란까지 겹치면서 악재란 악재는 모두 불거지는 양상이다.
한국지엠에도 직간접적 불똥이 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점화장치결함으로 최근 160만대를 리콜한 GM 내부에선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같은 결함을 알고 있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GM 창사 이래 첫 여성CEO가 된 메리 바라 회장은 결함문제를 지난 1월31일 처음 접했지만, 회사 주요 간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점화장치결함으로 자동차 엔진이 꺼지거나 전자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결국은 에어백작동을 막아 치명적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만큼 GM 내부에선 결함문제를 쉬쉬했다는 얘기다.
GM은 지난달 중순 점화장치 결함으로 인해 78만대를 리콜한다고 발표했다가 이후 해당 결함에 따른 사고가 더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자 하순 리콜 대상을 160만대로 확대했다.
업계 일각에선 결함 자체보다 결함은폐 의혹이 GM에 심각한 후폭풍을 안겨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선 리콜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결함을 숨겼다면 곧바로 도덕성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심각한 신뢰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9~2010년 도요타는 가속페달 결함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의 리콜 결정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끌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 같은 늑장대응은 신뢰추락으로 이어졌고, 결국 도요타는 세계정상의 자리를 내주게 됐다. 때문에 업계에선 GM의 결함은폐 의혹이 자칫 '제2의 도요타'사태로 번질 가능성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현재 NHTSA도 이번 리콜사태와 관련해 정밀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리콜과 결함은폐의혹은 그렇지 않아도 갈길 먼 GM에겐 설상가상이나 다름없다. GM은 금융위기와 구제금융 후유증에서 조기 탈출, '미국자동차의 부활'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GM의 작년 4분기 순이익은 10억4,000만달러에 그쳐 전년동기(11억9,000만달러)보다 13% 가량 감소했다. 이에 따라 연간 순익도 2012년 61억9,000만 달러에서 53억5,000만달러로 감소했다. 반면 경쟁사인 포드는 90% 이상 실적개선을 거뒀다.
가장 큰 이유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의 부진. 유럽에선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키로 했고, 호주에선 현지브랜드인 홀덴의 생산을 2017년까지 중단키로 한 상태다. 안방인 미국시장에선 그나마 선전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그럭저럭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일본과 유럽, 한국 브랜드에 밀려 입지가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도요타에 빼앗긴 세계정상의 권좌 탈환은커녕 2위 자리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지엠도 덩달아 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철수결정으로 현지 수출되던 쉐보레를 만들던 한국지엠은 일감이 줄어 사무직 감원까지 실시했다. 쉐보래 브랜드 철수는 2015년이지만, 한국지엠 주력차종인 준중형 크루즈의 지난달 유럽 수출(선적기준)은 전년동월 대비 62%나 급감했다. 역시 주력모델인 경형승용차 스파크도 작년보다 63%나 격감하는 등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지엠으로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리콜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느냐가 GM의 미래에 큰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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