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답안을 찾는 제도권 문학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현대시를 서사의 논리나 스토리텔링의 논법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난해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시를 읽으며 느꼈던 매혹과 설렘을 대중과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면서 한국 문학이 그런 문제점으로부터 시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소리의 회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목소리는 카페 음악 소리에 묻힐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또박또박 이어지는 음절들의 조합은 어떤 연설보다 묵직했다. 활자화한 시에 밑줄을 긋고 'A=B'라고 주입하는 군대식 교육을 하는 환경에서 시의 고유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5년 만에 낸 시집 에도 은근하게 녹아 있다. 최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 김경주(38)는 "시의 고유성을 되찾는 방법은 소리의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주는 국내 시인 중 옛 시인에 가장 가까운 일을 하는 이다. 시가 노래이자 극이고 철학이었던 그 옛날처럼 그는 시를 쓰고 음악을 하며 극을 쓴다. 첫 시집 를 내기도 전인 2000년대 초부터 상수동을 중심으로 낭독 운동을 펼친 주인공이기도 하다. 네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에 담긴 시도 모두 그가 낭독회에서 먼저 공개한 작품들이다. 시를 쓸 때마다 혼자 중얼거릴 공간을 찾는다는 시인은 지난해 말 제주도의 한 폐가에서 지내며 시집에 수록할 시들을 입술과 혀끝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손질하며 복기했다.
입김, 구름, 물보라, 안개 등 시집에는 금세 형제가 사라지는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제목의 '고래와 수증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금방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는 것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고 묻는 게 내게 중요한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제목 후보이기도 했던 연작시 '시인의 피'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지은 입김 속에서 증발"하는 존재다.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 / 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 / 그는 어떤 배역 속에서건 자주 사라진다 /……/ 입김은 문장을 짓고 그곳을 조용히 흘러나왔다."
시인은 정박하지 않고 유동하는 이미지에 종종 붙들린다. '고적운'에선 "구름이 밀려와 // 물방울 안으로 // 구름 속이 밀려와 / 저녁이 분다"라고 썼다.
문학평론가인 조재룡 고려대 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는 세계를 떠돌고 있는 무정형의 자취들을 그러모아 삶의 잠재성을 일깨우기 위해, 감수성을 무기로 치러내는 통념과의 힘겨운 싸움이라고 해야 한다"고 적었다.
그는 우리 모두 최소한 한 방울쯤은 '시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시가 동시대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질문하며 센 소리가 아니라도 시로 보여줄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라면 이런 피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해서 쓴 게 연작시 '시인의 피'입니다. 온전한 서사로 쓰지 않아도, 부족한 은유와 덜 응축된 언어로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을 담았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