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아니라 의회의 축소판 같다. 극장에 입장하는 관객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리모컨을 받는다. 배우는 따로 없다.
스페인 연출가 로제 베르나트의 '투표는 진행 중입니다'는 대의민주주의를 몸소 체험하는 공연이다. 투표가 계속되면 리모컨의 개수가 점점 줄고 리모컨 수에 맞춰 관객은 그룹을 결성한다. 토론을 통해 그룹 대표만 투표에 참여하면서 예기치 못한 결과가 나오고, 관객은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대의민주주의가 국민 개개인의 결정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시스템이 국민을 조정하는가.
무용, 연극,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예술 전 장르 간 소통을 지향하는 국제 다원예술축제인 8회 '페스티벌 봄'이 14일 이 작품으로 개막(14~16일ㆍ문래예술공장 박스씨어터)해 4월 13일까지 서울, 부산, 일본 요코하마에서 계속된다.
이승효 제2대 예술감독이 부임한 올해 페스티벌 봄은 국제 예술계의 최신 경향을 소개하는 축제의 기존 방향성은 유지하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 작품 위주의 국제교류 방식에서 벗어나 서울, 부산, 요코하마 동시 개최로 교류의 개념을 관객의 이동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했다. 여행사와 연계한 '아트투어'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대형 프로덕션보다 예술가 개인의 독립적인 활동에 좀 더 힘을 실었다.
따라서 국내외 40여 참가작의 면면은 각기 다른 개성이 돋보인다. 노르웨이 작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인 아문드 숄레 스벤의 '바보들을 위한 경제학'(4월 2~3일ㆍLIG아트홀 강남)은 강연 형식의 공연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경제학 개념을 독특한 사운드 퍼포먼스를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낸다. 벨기에의 사운드 아티스트 야콥 앰프와 안무가 피터 앰프 형제, 벨기에 국제예술센터 캄포(CAMPO)가 제작한 무언극 '제이크와 피트의 화해를 위한 시도'(29~30일ㆍ서강대 메리홀)도 주목할 작품이다. 일본의 불안한 미래를 그린 오카다 도시키 연출의 '지면과 바닥'(4월 7~8일ㆍ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도 기대작이다.
브라질 안무가 마르셀로 이블린의 '사람들이 갑자기 새까맣게 모여든다'(4월 1~3일ㆍ문화역서울284 RTO), 예술가 그룹 덤 타입의 리더로 동성애자이며 에이즈 보균자임을 무대에서 고백하고 공연 투어 중 사망한 후루하시 데이지의 유작 'S/N'(3월 25일·서울아트시네마) 등은 관객에게 문화 충격에 가까운 경험을 안겨 줄 독특한 작품이다. (02)730-9617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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