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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10일] 음력의 겨울

입력
2014.03.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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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며칠 몹시 춥기도 했다. 경칩도 지났고 매화며 동백에 봉오리가 맺혔지만 행인들의 복장은 털외투에 목도리라 봄이 온다기보다는 겨울이 간다는 느낌을 주는 날씨였다. 그렇다면 늦겨울 날씨라 해도 좋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늦봄, 늦여름, 늦가을과 달리 늦겨울이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는다. 새싹이 돋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에 '늦-'이라는 접두어를 붙이는 게 어색한 탓도 있고, 달력의 양 끝에 겨울이 나뉘어 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겨울은 한 해의 끝자락에 시작되고 이듬해 초에 물러나니 시작이 시작이라 하기도 끝이 끝이라 하기도 뭣한 데가 있다. 2014년 겨울이라 하면 대략 언제쯤일까. 이미 지난 연초일까 아직 오지 않은 연말일까. 작년 말 시집을 낸 K는 '뒷겨울'이라 때를 적어 내게 책을 건넸다. 양력의 셈법이 K의 겨울을 '앞겨울'과 '뒷겨울'로 가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음력에 마음이 기운다. 24절기와 통하는 양력은 한 해의 흐름을 합리적으로 알리지만 겨울에 온전한 자리를 주지는 않으니까. 음력의 겨울은 정확히 한 해의 끝부분에 놓인다. 동짓달에 절정에 이르고 섣달엔 막바지 기승을 부린다. 새해 정월엔 물러나는 겨울과 다가오는 봄이 엎치락뒤치락 한다. 음력의 연초에도 눈치 없이 떠나려 하지 않는 겨울이라면 늦겨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지. 지금은 음력 2월이다. 양력 3월은 초봄이지만 음력 2월은 늦겨울이라 우기고 싶어진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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