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러시아 귀속을 묻는 주민 투표를 앞둔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자치공화국은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화약고 같은 분위기다.
친러시아파가 장악한 의회의 갑작스런 투표 결정에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주민 가운데도 당혹해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우크라이나계와 크림타타르 주민들은 당장 투표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상 러시아군이 장악한 아래서 치러지는 투표라 이런 소수민족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반영될지도 불투명하다. 겉으로 평온하지만 갈수록 긴장이 높아지는 크림반도의 상황을 키예프포스트, 아사히신문 등 주요 외신 르포를 모아 소개한다.
"크림은 우크라이나와 한몸이다. 분리해서는 물도 전기도, 살아갈 수도 없다. 그런데 '러시아 편입'이라니 바보 같은 짓이다." 러시아계 주민 올가(47)는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체 인구의 약 24%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계 주민들도 8일 수도 심페로폴에 집회를 열어 러시아군의 개입과 그 아래 치러지는 주민투표에 반대를 표시했다. 시내 곳곳에서 투표를 환영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어 지금까지 이런 소수민족의 집회는 거의 없었다. 100명 정도 모인 이들은 피켓 등을 들고 "평화를" "주민투표반대" 등을 외쳤다.
크림 토착민인 타타르인(인구의 10% 남짓) 자치조직 '메지리스'도 6일 "주민투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해 크림반도 주민들에게 투표 보이콧을 호소했다. 1991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크림반도로 온 일다르 이브라미노프는 "20년 걸쳐 만들어 놓은 생활터전을 다시 뺏길까 걱정"이라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친러시아계 무장세력이 타타르인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스탈린 시절 20만명의 타타르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킬 때(이후 절반이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다)처럼 타타인들의 집에 'X'자 페인트 칠을 한 경우도 생겨났다.
우크라이나 새 정부의 외무장관도 이날 "주민투표의 결과는 효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영토 변경은 전국투표를 거쳐야만 가능한 것이며 크림반도의 주민투표는 위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 편입에 찬성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푸대접으로 지역이 낙후했다는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택시운전사 발레리(42)는 "크림반도는 소치보다 더 좋은 리조트 지역"이라며 "러시아령이 되면 지금보다 관광객이 늘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그는 "야누코비치도 새정권도 우크라이나 정치인은 모두 부패해 세금을 내봐야 그들 손에 쥐어줄 뿐"이라며 "푸틴쪽이 그나마 더 낫다"고 말했다. 질렸다는 표정으로 친러시아계 주민집회를 보고 있던 나탈리아(49)는 "러시아니 우크라이나니 하는 건 어차피 정치게임"이라며 "그냥 생활이 더 나아지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크림공화국 정부가 7일 공개한 투표용지를 보면 주민투표는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은 러시아 편입을 지지합니까." "1992년 크림자치공화국 선포 당시 지위 회복을 지지합니까." 투표는 바로 러시아에 편입할 것인지, 일단 분리독립했다가 나중에 러시아에 편입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해석했다. 크림 정부는 주민의 여권을 러시아 여권으로 바꾸는 절차도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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