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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러시아 흑해서 연일 무력시위… 신냉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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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러시아 흑해서 연일 무력시위… 신냉전 그림자

입력
2014.03.0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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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의 서막인가. 러시아의 군사개입에 대응해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자산 동결과 비자발급 제한 등 러시아 제재 카드를 꺼내 들자 러시아는 군축협상 중지를 입에 올리고 있다.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미러 병력이 모여 드는 등 군사적 긴장감도 커진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냉전을 끝낸지 거의 사반세기 만에 가장 격심한 동서 대립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외교 노력이 자칫 실패로 돌아갈 경우 냉전체제의 시작을 알렸던 얄타회담이 열린 크림반도에서 다시 신냉전의 막이 열릴 판이다.

美 구축함 동원, 러 대공훈련

러시아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8일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책과 관련해 근거 없는 위협을 하고 있다"며 "상응 조치로 미국과 합의한 핵무기 감축 프로그램을 중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전했다. 미러는 2010년 핵무기 보유를 줄이는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를 체결했다. 러시아가 이 협상을 재고할 경우 이란, 북한 등의 핵확산을 막는다는 미국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전날에는 "2009년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천연가스 공급 중단도 시사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체 가스 수요의 약 60%를, 유럽은 약 3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가격협상 실패로 2009년 한동안 가스 공급을 중단하자 우크라이나와 유럽에서는 난방이 차질을 빚는 등 큰 혼란을 겪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크림반도에 맞닿은 흑해에서 극명하다. 미국은 핵추진 미사일 구축함인 'USS 트럭스턴'을 7일 흑해로 이동시켰으며, F-15 전투기 12대와 병력 300명을 폴란드에 파견할 예정이다. 이에 러시아군 서부관구는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카푸스틴야르에 병력 3,500명을 동원해 대규모 대공훈련을 벌이며 무력을 과시하고 있다.

푸틴 선제적 군사개입이 긴장 악화

앞서 미국은 6일 비자발급 제한과 자국내 러시아인 자산 동결, 미러 양자무역 협상 보류 등 러시아 제재안을 내놨고 유럽연합(EU)도 비자면제협상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1999년 옛유고슬라비아 공습 때도, 2008년 그루지야분쟁 때도 없었다. 사실상 냉전 종식 후 처음이다. 지금 동서 대립의 강도가 높다는 의미다. 미국, EU 모두 추가제재도 검토 중이다.

냉전 종식 후 동서 긴장이 없었던 건 물론 아니다. 2000년대초 미국이 러시아의 코 앞인 동유럽에까지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배치할 계획을 밝히자 러시아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는 형국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에도 미국과 러시아간 날 선 목소리만 오갔지 구체적인 군사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이 제재안 카드를 꺼내는 등 강경대응을 결단한 것은 우선 러시아가 선제적으로 군사개입 카드를 썼다는 데 있다. 무력점거를 두고 볼 경우 미국의 향후 대외전략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는 분석도 깔렸다. 1994년 핵무기 포기의 대가로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책임도 있다. 이번 사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이란, 북한 등을 상대로 벌이는 핵무기 포기 후 경제보상과 안보 우산 제공 전략도 무용지물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대로 자국민 보호를 내세우는 푸틴을 계속 묵인한다면 같은 논리로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국가에도 무력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러시아 제재 과연 효과 있나

하지만 미국 등의 러시아 제재가 실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의 대미국 수출액은 지난해 석유제품 193억 달러 등 총 269억 달러에 불과하다. EU와 러시아 간 비자면제협정 역시 그 동안 별로 진척이 없었던 사안이라 당장 협상을 중단하더라도 피해가 없다.

미국은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본격화할 경우 러시아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국제은행을 제재하는 이란식 경제제재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강수를 실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크림반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가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자산동결과 여행금지 등 제재수위를 높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독일 등 주요국이 러시아와 무역관계가 깊은데다 EU 전체로도 제3위 교역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경제제재를 확대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형편이다.

서방 외교적 해법 모색에 주력

그래서 우선 미국과 유럽 각국은 외교적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사실 대화를 통한 해법 말고는 뾰족한 대안도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정상들과 연쇄 전화회담을 했고,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등 발틱 연안 국가 정상국가들과도 통화를 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회담 후 러시아가 크림반도?긴장상태를 해소시키지 않는다면 '새로운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사태 해결을 거듭 촉구했다. 케리 장관은 "크림 반도를 러시아로 합병하는 것은 외교통로를 완전히 봉쇄하는 행위라는 점을 경고했다"고 미 국무부는 밝혔다. 양국 장관은 사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긴밀하게 연락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외무차관은 크림반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주러시아 우크라이나 대사를 불러 회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ㆍ중국과 협력 움직임

서방의 포위공세에 몰린 러시아를 향해 역시 미국과 적대적 경쟁관계인 중국이 손길을 내미는 상황에도 눈길이 간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국제관계에서 걸핏하면 제재를 가하는 것에 일관되게 반대한다"며 미국ㆍEU의 러시아 제재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친 대변인은 이어 "우크라이나 상황이 촉발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며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비 확대,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으로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미일과 대립하는 중국은 이번 사태를 러시아와 관계를 다질 기회로 여기는 듯도 하다. 이미 푸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초 정상취임 뒤 첫 해외방문국으로 상대국을 선택하는 등 협력 무드였다. 푸틴은 5월 중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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