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오리. 모든 동물이 불쌍하다고 보면 다 불쌍하지만, 이 녀석들은 더욱 그렇다. 태어나는 것 자체가 또 길러지는 것 자체가 사람을 위해, 더 정확하게는 요리되기 위해서이니 이보다 더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닭이나 오리는 평균수명이 짧게는 7년, 최장 30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값을 받을 때, 대략 생후 1~3개월에 팔리는 게 얘들이다.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조류인플루엔자(AI)는 더 가혹하다. 감염된 닭과 오리는 그렇다 쳐도, 멀쩡한 놈들까지 죽어야 한다. 단지 전염을 막기 위한다는 이유로 내려지는 '예방적 살처분'이다.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시작된 AI로 인해 50여일 만에 7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AI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터라, 이 추세라면 2008년 기록(1,000만 마리)를 넘어 사상 최대의 살처분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예방적 살처분은 AI발생 농가로부터 ▦반경 500㎙에 대해서는 중앙정부(농림축산식품부)가 결정하고 ▦반경 3㎞에 대해서는 전파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될 때 지방자치단체장이 판단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이번에 농식품부는 초기부터 3㎞이내 모두 살처분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학계 일각과 동물보호론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시행되고 있는 그리고 점점 더 강도가 세지고 있는 이 예방적 살처분 조치에 대해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이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뭣보다 정부의 AI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예방적 살처분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시행해온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발생주기, 사육 밀집도, 농장간 거리 등 조건이 전혀 다른데도 무작정 도입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 등에 따르면 선진국에선 AI가 대략 10년에 한번 꼴로 발생한다. 반면 우리는 2,3년 주기다. 네덜란드는 2003년 AI가 발생해 1,900만마리를 예방적 살처분 한 이후 8년 만인 2011년 AI가 재발했다. 캐나다는 2004년 1,700만마리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한 이후 아직까지 AI가 발생하지 않았다.
더구나 EU에선 최근 들어 예방적 살처분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보고, AI 발생농가의 가금류만 살처분 하고 인근 지역의 가금류는 살처분 대신 이동을 제한하는 것으로 예방 제도를 개선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도 같은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 대신 이동 제한을 권고하고 있다. 네덜란드 역시 2011년 AI 때는 예방적 살처분 발병개체에 대한 선택적 살처분만 실시했다.
때문에 서 교수는 "우리나라도 이젠 AI가 연중 발생하는 중국과 동남아처럼 백신사용 등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도 "예방적 살처분을 했는데도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라며 "고병원성이 확인됐을 때 살처분하는 선택적 살처분으로 바꾸고 차라리 백신 등을 사용했다면 대규모 살처분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방적 살처분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이란 의견을 내놓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그나마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았다면 AI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서 정말로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연중 발생지역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취하고 있는 정부 역시 마찬가지입장이다.
백신사용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OIE백신에 대한 권고를 봐도 단계적으로 긴급백신, 규칙적백신, 예방백신으로 나눠 백신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제적 가치나 보존가치가 높은 개체, 동물복지농장 개체 등 일부에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훈 농식품부 방역관리과장은"AI바이러스는 종류만도 무려 144종이 있고 변이가 자주 일어나서 백신 효과가 떨어진다"며 "만에 하나 변이과정에서 사람에게 옮을 수 있어서 백신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철새를 AI 발생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정부는 이번 AI확산이 기본적으로 철새에 의해 묻어온 바이러스가 주변 닭과 오리에게 옮겨진 것으로 규정한 상태. 하지만 우희종 교수는 "정부가 철새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부터 잘못됐다"며 "AI 발생 가능성을 자꾸 외부에서 찾다 보니 비위생적인 밀집사육, 체계적인 역학조사시스템 부재 등 내부요인에 대해서는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AI원인이 무엇이든, 예방적 살처분이 옳든 아니든, 어쨌든 지금 방식보다는 좀 더 개선된 진단과 대응이 모색되어야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정훈 과장은 "정부의 정책이 100%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방적 살처분 이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농가의 빠른 신고와 사전예방을 위한 지속적 농가 관리 등의 체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번 AI가 종식되면 箚?시설 구조나 방역체계 등 총체적 점검을 검토할 계획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성지은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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