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구해보겠습니다. 2주만 더 시간을 주시면…."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 재판장의 질책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피고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재판장은 피고인이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이날 두 번째 열린 재판마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자 "며칠 내로 안 되면 국선변호사를 지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말미를 더 달라고 호소한 피고인은 1970년대 조폭 1세대 조양은(63)씨였다. 그는 조직원과 함께 저축은행으로부터 102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필리핀으로 도망을 갔다가 지난해 11월 현지에서 체포, 송환돼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10대 후반 주먹 세계에 발을 들여 1975년 명동 사보이 호텔에서 신상사파를 급습한 사건으로 일약 거물 조폭이 된 후 고 김태촌의 서방파 등과 함께 '3대 패밀리'로 꼽혔던 양은이파 두목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때 지하 세계를 군림했던 그가 돈이 없어 변호사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 처지가 된 것이다.
조씨의 도피 생활과 검거를 두고도 세간에는 여러 말들이 떠돈다. 원한 관계인 조폭이 필리핀에 사람을 보냈다는 말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껴 제 발로 경찰을 찾아 갔다는 것이다. 또 2012년 3월에는 여권 무효화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뒤 필리핀 교민을 폭행하고 협박해 수억원을 받아 챙기면서 현지 조폭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는 말도 있다.
강력부 소속 한 검사는 "사기 사건 등에 계속 휘말리면서 그 쪽 세계에서는 사실상 퇴출됐다고 보면 된다"며 "조폭 거물의 경우 후원자가 나서 변호사도 구해주고 하는데 이번에는 누구 하나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조씨가 이번 재판에서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조씨는 범죄단체 결성 혐의로 15년, 억대 스키 회원권 갈취, 해외 원정 도박, 폭력 및 갈취, 트로트 가수 협박 등으로 평생의 3분의 1에 달하는 총 19년 4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조원일기자 call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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