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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살 권리

입력
2014.03.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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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지하철을 타고 산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도시이다. 그런 도시들이 지구상에 흔하기는커녕 찾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청계산 등 멋진 산들을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지하철만 타고도 오를 수 있으니 복도 이런 복이 없다. 그래서일까? 주말이면 서울의 산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일에도 한적하지 않으니 주말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그 많은 사람들을 산은 묵묵히 받아준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요즘 산길에서 짜증나는 일을 흔하게 겪는다. 3,000곡이 들어있다나 뭐라나 하는 물건이 도처에서 시끄럽다. 음악을 들으며 산에 오르는 것은 산행에서 누리는 또 하나의 덤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좋다고 남까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 물건을 애용하는 이들 상당수는 이어폰 꽂고 조용히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여봐란 듯 크게 틀어놓고 누비며 다닌다. 얼마 전 도봉산에 오르면서 그런 이들 또 만났다. 그래서 아예 먼저 가라고 길을 비켜줬다. 그런데 아뿔싸! 그 소리 그칠 만하면 또 다른 소음의 침입자가 다가온다. 할 수 없이 아예 길 밖으로 나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이건 아예 소음의 행진이다.

산에 오르는 건 건강을 위해 자신의 체력을 단련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사색하려고 길을 나서기도 한다. 때론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음악 조용히 들으며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나 좋으면 다른 사람들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등산객들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아마 그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운 음악 들려준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헤아린다면 그렇게 무턱대고 틀어대는 게 폭력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속세로 돌아가면 사방에서 온갖 소음과 외침으로 피곤해지는데 왜 굳이 산에서까지 그런 달갑지 않은 소음의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진중하게 듣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우리의 일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취임 이후 1년 여 만에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질문을 받지 않거나 마치 짠 각본처럼 알맹이도 없는 질문으로 전파나 낭비하면서(그래서 우리가 알게 된 건 개 이름뿐이라던가?) 그걸 소통이라 여기는 윗분들의 행태나 제 말만 고래고래 떠드는 아이들이나 그저 온통 소음뿐이다. 진짜 듣고 싶은 말이나 이야기는 모두 감추고 제 하고 싶은 말만 떠든다. 듣는 이를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도 감추고 비틀며 촌스럽게 되도 않는 자랑질이나 해대면서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방송들을 볼작시면 이건 숫제 안쓰럽다. 헛발질에 엉터리 응원으로 도배질하는 중계방송을 보는 꼴은 역겹다. 그런 꼴 보기 싫어 산에 올랐더니 여기저기 소음에 또다시 시달린다.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나무가 속삭이는 이야기 들으러 올랐는데 그 소음 벗어나려고 할 수 없이 이어폰을 꽂는다.

지난 주말에 오른 마니산에서는 그 소음기 틀어대는 딱 한 사람을 만났다. 단군의 정기 탓에 소음기들 꺼둔 탓이었을까? 모처럼 미세먼지 갠 날씨 덕분이었을까? 다른이들보다 늦게 내려온 덕분에 하산길은 한적했다. 바람소리 새소리 맘껏 누리며 한가롭게 내려오는 길에서 누린 모처럼의 행복은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어주었다. 나 좋다고 남 귀까지 망치고 마음 상하게 하며 귀한 휴식까지 망가뜨리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TV 뉴스를 보면서 그 소음기의 악몽을 만났다. 진실은 감추고 허위와 홍보로 도배한 뉴스들을 태연하게 떠들어댄다. 산에서의 소음기는 잠깐 비켜서거나 이어폰 꽂고 막으면 그만이지만 이 소음의 폭력은 우리의 삶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농락한다. 언론이 아니라 언롱(言弄)을 일삼으면서 수신료 현실화가 공영방송의 근본이라며 돈이나 더 내란다. 뻔뻔스런 폭력이다. 그 꼴 보기 싫어 TV라도 없애야겠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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