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 조작이 사실로 굳어지면서 지난달 국회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된 국가정보원 개혁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야당이 국정원장 해임을 포함한 관련자 처벌과 대공 수사권 분리 주장을 다시 제기하고 나섰고, 수세에 몰린 여당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특별위원회(국정원 개혁 특위)' 야당 간사였던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7일 "국정원 협력자도 요구한 '국정원 개혁'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며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 및 법사위ㆍ정보위 등 관련 상임위원회 개최를 새누리당에 촉구했다. 야당으로서는 모처럼 잡은 기회를 활용,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국정원 개혁 문제를 재논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야당이 주장해온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대공 사건의 대표격인 간첩 수사에서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만큼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서 떼어 내야 한다는 야당 쪽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28일 마무리된 국정원 개혁특위에서는 '대공 수사권을 떼어 내면 국가안보가 위험해진다'는 여당 반박에 야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나,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당 논리가 다소 궁색하게 됐다.
더욱이 이번 사건이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어떤 행태로든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그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책임추궁과 해임을 요구하는 야권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나 새누리당도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청와대도 사안의 중대성과 파장 때문인지 아직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증거 조작의 진실을 지울 수는 없다. 특검만이 유일한 해법으로 청와대는 이를 수용해야 한다"며 청와대를 겨냥해 공세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간첩 의혹은 간첩 의혹 대로, 증거조작 의혹은 그것 대로 구분해서 조사해야 한다"며 "수사 과정에 영향을 주려는 어떠한 시도를 해서도 안 된다"고 야당의 정치 쟁점화 시도에 차단막을 치고 나섰다.
허경주기자 fairyh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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