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제'를 폐지해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10년도 더 넘은 일이다.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신청한 사람의 부모나 자녀에게 재산이 있거나 일할 능력이 있으면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제도다. 지난달 하순 서울에서 자살한 세 모녀도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했더라도 탈락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근로능력이 인정되는 두 딸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고, 지병이 있는 장녀는 근로능력이 있는 어머니 때문에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이 서로 족쇄가 되는 셈이다.
최저생계비 기준이 낮은 데다 부양의무제까지 부정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부양의무자가 능력이 있더라도 미약한 경우 일정액을 부양비로 산정한다. 그리고 돈이 수급권자에게 실제로 지급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액수만큼 생계급여를 감액하는 이른바 '간주부양비'의 부작용도 크다.
기초생활수급 탈락자 중 30% 가량이 부양의무제 때문으로 추정되는데도 제도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부양의무제를 전면 폐지할 경우 94만명이 새로 혜택을 볼 수 있으나 6조8,000억원이 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해 기초생활보장제의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돈 문제뿐일까. 아직도 가족은 가족이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 부양의무제를 없애야 할 정도의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이 이 제도의 개선이나 폐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울러, 빈곤층은 물론 일반 국민의 공공 부조에 대한 신뢰나 개념 정립도 덜 돼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규정대로 국민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소한의 '권리'이다. 거꾸로 말해 빈곤한 개인과 가족들을 돕는 것은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다. 그런데도 생활 보장보다 오히려 부정수급을 막는 데 치중하는 것처럼 보일 만큼 우리나라의 복지제도 운영은 소극적이거나 방어적이다.
이제 복지제도 운영에 관한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할 시점이다.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권도 보장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말이 되는가. 재원을 재분배하고 새로 발굴함으로써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보강해 빈곤의 악순환과 자살을 막아야 한다.
고독사 예방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1인가구연합(대표 송영신)이 세 모녀 자살을 계기로 발표한 성명에는 구체적 대안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은 1)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2)기초생활 수급자를 신청주의에서 직권주의로 개편할 것 3)인구 1만명 당 1개의 자치 긴급 공공부조위원회 설치 등이다.
전산망도 좋으니 신청을 받기만 하지 말고 수급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선정하자는 것이다. 긴급 공공부조위원회는 의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풀뿌리 복지행정 시스템을 구축해 긴급한 일이 발생할 때 대처토록 하고, 5조 원에 이르는 예비비를 긴급 공공부조에 쓰자는 주장이다. 충분히 검토할 만한 제안이라고 생각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기초생활보장법·장애인연금법 개정안과 기초연금법 제정안 등 이른바 '복지 3법'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안은 '수급 대상자를 늘리면서 혜택은 쪼개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정안은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삼는 최저생계비(올해 3인 가족 월 132만9,118원)를 폐지하는 대신 중위소득을 새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위소득의 개념이 모호해 대상자가 자꾸 달라질 수 있다. 일괄 급여에서 생계 주거 의료 등 부문별 개별 급여로 바꿀 경우 혜택이 줄어들 수도 있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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