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orld] 중국 만리장성 '낙서존' 설치 고육책… 사람들 흔적욕구 막을 수 있을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orld] 중국 만리장성 '낙서존' 설치 고육책… 사람들 흔적욕구 막을 수 있을까

입력
2014.03.07 12:28
0 0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낙서 허가 구역을 조성하기로 했다.

만리장성의 낙서는 중국에서 큰 문제가 돼왔다. 2006년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에서 낙서를 한 사람에게 최고 600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장성보호조례'를 공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리장성에서의 낙서는 줄어들지 않았고, 유적은 계속해서 훼손됐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맘놓고 낙서할 수 있도록 하는 '프리 낙서 존'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중국 당국이 만리장성 무티아뉴(慕田峪) 구역에 특별 낙서 구역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곳에선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필적을 남길 수 있다. 프리 낙서 존은 무티아뉴 구역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은 낙서를 남긴 탑 중 한곳에 조성된다. 당국은 프리 낙서 존을 주변 2,3군데에 더 만들고, 향후에는 전자 터치스크린으로 된 낙서벽을 세우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중국에서 전자 낙서벽은 이미 그 효용성이 증명됐다. 또 다른 유명 관광지로 낙서로 몸살을 앓았던 허베이성 우한시의 황학루에는 지난해 3개의 전자 낙서벽이 세워졌다.

벽에 낙서를 하고픈 충동은 우리 주변에 낙서를 할 만한 벽이 생긴 것만큼이나 오래됐다. 이집트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에는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이가 자신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를 낙서로 남겨놓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에페수스(터키의 유적지)의 포장도로에 근처의 매춘굴로 가는 방향을 새겨놓았다. 폼페이에선 당시에 새겨놓은 사랑의 서약이나 정치적 구호, 음담패설과 욕설 등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과거 고대 유적지를 여행하는 이들은 마치 관습처럼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기록하곤 했다. 기원전 1240년 이집트의 하드나크테란 재무담당 기록관은 형제인 파나크티와 함께 멤피스 서쪽으로 여행을 갈 것이라고 기자의 신전 벽에 낙서를 남겼다. 로마인들은 기자의 피라미드를 거대한 방명록으로 여긴 듯 했고, 나폴레옹의 군대부터 바이런 경까지 수 세대에 걸친 유럽 관광객들은 그들의 낙서 흔적을 그리스와 이탈리아 이집트 등에 흩뿌려 놓았다.

1850년대 프랑스 소설가 구스타프 플로베르는 삼촌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처에 널린 낙서 때문에 무척이나 화가 났다고 밝혔다. "수많은 바보 얼간이의 이름이 모든 곳에 쓰여있다. 톰슨, 선더랜드 같은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폼페이의 기둥에 높이 180㎝나 되는 크기로 새겨놓았다. 400m 밖에서도 읽을 수 있는 크기다. 그 이름을 읽지 않고선 유적을 둘러볼 수 없을 정도다. 이 바보 얼간이는 유적의 일부가 되었고, 아마도 유적과 함께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여행작가 롤프 포츠의 에세이에 따르면 어느 미군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도 중국의 마르코폴로 다리에도 '킬로이가 왔다 감'이라고 새겨놓았다고 한다.

각 국가들은 유적지의 낙서를 막기 위해 더욱 엄격해지고 있다. 이집트에서 낙서 위반은 2만달러 이상의 벌금이나 최고 12개월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인도에선 타지마할이나 델리의 로디가든, 푸라나킬라 고성 등에서 낙서를 하면 1라크(약 970유로ㆍ140만원)의 벌금과 최고 2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영국에선 클리포트 타워와 요크의 콘스탄틴 동상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구호를 적은 사람에게 최근 4개월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영국헤리티지는 영국 내 7만개에 달하는 역사유적과 건물이 낙서 등으로 훼손될 수 있다고 추산했고, 낙서를 막기 위해 조명, CCTV와 펜스나 관목 등 울타리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영국 헤리티지는 이러한 방법도 모든 건물에 적용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낙서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 벽을 코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낙서 방지효과가 있는 폴리머 코팅은 잘 스며드는 재질의 오래된 건물에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코팅이 물의 증발을 막아 곰팡이를 일으키고 소금 결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제안으로 한 독일 기업은 현재 숨 쉴 수 있는 코팅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최근 낙서로 세계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던 사건은 지난해 5월 중국 난징에서 온 중학생이 3,500년 된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딩진하오가 왔다 감'이란 글을 새긴 것이다. 3,500년 전 하드나크테처럼.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