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기 국수전 예선이 지난 3일 한국기원 2층 대회장에서 개막됐다. 한국기원 소속기사 230명이 출전해 12일까지 토너먼트방식으로 본선 진출자 11명을 가린다.
그런데 예선 첫 날부터 기권자가 속출했다. 3일 열린 대국 51판 가운데 20%가 넘는 11판에서 어느 한 쪽 대국자가 대국장에 나오지 않아 기권패 처리됐다. 대회 이틀째에는 기권자가 10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이틀간 대진표에 올라 있는 선수 230명 가운데 21명이 기권을 한 셈이다. 한 달 전에 치른 바둑왕전 예선 불참자 8명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에 달하는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
국내외 기전 예선에서 무더기 기권이 발생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기원의 구태의연한 기전 운영방식과 일부 기사들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맞물려 번번이 되풀이되는 일이다.
한국기원은 현재 공식적으로는 온라인 대국통지시스템을 통해 소속기사들에게 기전 개최 일정을 알리고 출전 여부를 통보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 시스템을 이용해 출전 신청을 하는 기사는 전체의 절반도 안 된다.
이번 국수전의 경우 전체기사 291명 중 대국통지시스템을 통해 출전 신청을 한 사람은 124명뿐이다. 반면 22명이 대국통지시스팀을 통해 불참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밖에 전화로 불참을 통보한 기사가 7명이고, 군 복무나 해외 파견, 질병 등의 사유로 휴직 중인 기사가 26명, 본선시드 배정자 6명을 합해 모두 61명의 불참 의사가 확인됐다. 나머지 106명은 출전 여부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굳이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아도 기원에서 알아서 대진표에 넣어줄 것이므로 그냥 잠자코 있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와 반대로 출전 의사가 없지만 일부러 불참 통보를 하기가 귀찮아 그냥 놔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기원에서는 관례에 따라 이들 모두 대진표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해서 230명의 대진표가 작성됐다. 사정이 이러 하니 대국 당일 무더기 기권 사태가 빚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올해부터 국수전 예선 대국료가 없어진 것도 상황 악화에 일조를 했다. 어차피 대국료도 없으므로 기권을 해도 본인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구태여 불참 의사를 밝힐 필요 없이 일단 대진표에 이름을 올렸다가 기분 내키면 대국장에 나오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연하게 됐다.
프로기사가 대회에 참가하고 안 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이처럼 무더기 기권 사태가 발생하면 대회의 격이 떨어지고 대회 운영에도 불필요한 인력과 시간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기권패가 많아지면 대회가 재미없어지고 승률 통계까지 왜곡시켜 결과적으로 랭킹 산정에도 오류를 빚게 만든다.
개선 방법은 간단하다. 현재 운용 중인 대국통지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 모든 기사들이 반드시 대국통지시스템을 통해 출전 여부를 밝히도록 하고 무응답의 경우에는 당연히 불참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 또 정당한 사유가 없는 기권자에게는 다음 대회 출전을 금지시키는 등 적절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대회 운영 방식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