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괴롭힘 문제로 인간 본질 고민성실한 취재 기반한 심리 묘사로 피해·가해자 모호한 현실 드러내"100% 악도, 100% 정의도 없다"
유머를 이데올로기로 신봉하는 이들에게도 차마 웃으며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해학 넘치는 입담과 날카로운 현실인식으로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흐려온 일본 크로스오버 문학의 대표 주자 오쿠다 히데오(55). , 처럼 유쾌ㆍ경쾌ㆍ통쾌한 작품을 시그니처로 갖고 있는 그에게는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왕따 소년의 죽음' 같은 문제가 그랬나 보다.
새 장편소설 에서 오쿠다 히데오는 웃음기를 거둔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묵직한 성찰과 통한의 절규 같은 것으로 점철된 소설을 썼다는 말은 아니다. 기예나 솜씨를 부리지 않는 평이한 문장, 쉽고 빠른 서술, 익숙하고도 전형적인 인물들. 이렇게 써서야 신문기사와 무엇이 다를까 싶은 우려는, 그러나, 이내 불식된다. 바로 그 문장, 그 서술, 그 인물들로-유머도 없이!-독자를 와락 움켜잡는 솜씨, 그것이야말로 그가 거둔 특별한 성취일 것이다.
소설은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중학교 교정의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서 추락사한 열세 살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구라 유이치 : 하얀 얼굴에 삐쩍 마른, 이제 겨우 150㎝가 된, 변성기도 오지 않은 초등학생 같은 외모의 부잣집 외동아들. 다른 아이들이 맹렬한 속도로 남자로 변신해가는, 중2병이 창궐하고 있는 이 정글에서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춘 아이다. 이 '불쌍한' 아이의 등에 수없이 많은 내출혈의 흔적을 새겨놓고, 음료수 '셔틀'을 시키며, 금품을 갈취한 증거로 에이스케를 비롯한 네 명의 친구들이 살인 혐의를 받는다.
늘 '인간군상'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그의 소설답게 에도 수많은 인물들-교사들과 경찰, 기자들과 검사,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발언권을 가진 주요인물로 등장해 사건의 진실을 구축해간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을 신뢰하고 보호하려는 교사와 그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유족, 반드시 범인을 가려내겠다는 경찰과 입을 꾹 다문 아이들, 아들이 만 14세를 넘겨 경찰에 체포된 어머니와 생일을 두 달 남겨둔 덕에 아동보호소로 가게 된 어머니들 사이의 엇갈린 이해관계.
저마다 가진 파편적 정보의 은폐와 노출, 갈등과 대립의 조정을 통해 나구라를 죽게 만든 것이 무엇인가를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보여주는 이 다중시점의 서사구조 속에서 실로 대단한 것은 무섭도록 성실한 취재와 그에 기반한 인물 심리의 탁월한 묘사 및 리얼리티다. 작가는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게 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유감없이 활용해 각각의 인물 속으로 시선의 내시경을 깊숙이 찔러 넣고,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린 집단 괴롭힘이라는 사회문제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런 종류의 민감한 이슈를 소재로 다룰 때는 일말일지라도 용기가 필요한 캐릭터 조형술을 작가는 과감하게 구사한다. 피해자의 도덕적 단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자는 "자식을 잃은 어미가 여기 있는데, 세상은 상관없이 돌아갔다. 그 사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는 나구라 엄마의 가슴 아픈 독백과 함께 나구라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는 엄연한 현실과도 직면해야 한다. 소설의 목적이 집단 괴롭힘의 가해자를 단죄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구라는 어머니와 단 둘이 가난하게 사는 에이스케에게 "진짜 디즈니랜드도 못 가봤냐"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무신경하고, 여자아이들이나 1학년 후배들에게는 허세를 떨며 폭력으로 군림하려 한 아이였으며, 자신을 보호하려 누명을 쓴 에이스케를 배신하고 돈으로 '날라리 집단'의 보호막을 산 소년이었다. 어른들의 보호를 받는 덕에 책임을 추궁 당할 일이 없었던 초등학생과 달리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최초의 날들이 시작된 것이고, "다들 자기보다 약한 놈을 찾아서 분을 푸는" 슬프고도 무서운 먹이사슬에 이제 막 편입된 것뿐이다. 한국어판 서문에 쓴 작가의 말처럼 "100퍼센트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왕따 문제는 선악의 문제이기에 앞서 어른들이 세워놓은 '세계의 법칙'인 권력의 문제다.
사진을 싣는 것도,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극히 꺼리는 이 작가는 이례적으로 아사히신문에 연재한 이 소설 관련 인터뷰에서 "사람이 한 명 죽는다는 것은 정말로 큰 사건이라는 것, 그것은 조금만 상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만 상상'해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니까요. 저는 이번 연재에서 그 '조금만 상상'해 보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랑했던, 혹은 미워했던 사람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과 비극에 대처하는 인간군상의 다채로운 모습 속에서 사회현실과 뜨겁게 연동하는 일본소설의 저력을 본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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