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법 논의를 위해 전날 우리 정부가 제의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6일 거부했다. 또 지난 5일에는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통지문을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낸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북한 특유의 대결적 행태가 도졌고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날 통지문에서 "지금은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질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못하다"며 "현 남북관계로 봐서 상봉 정례화와 같은 중대한 인도적 문제들은 남북 적십자 간 협의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을 비관하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겉으로는 강하게 거부한 것 같지만, 앞으로 예상되는 고위급 접촉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샅바 싸움의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남북은 지난달 이산상봉이 마무리된 뒤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한국이 미국과 군사훈련을 벌이면 북한은 미사일과 신형 다연장포 발사로 응수하고, 북측이 '이산 상봉은 통큰 양보였다'고 성의 표시를 요구하면 우리 측은 통일부 장관이 나서 '약속 안 지키면 국물도 없다'며 맞서는 상황이 이어져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북한 통지문의 결론은 '만나지 않겠다'가 아니라, '상황이 좋아지면, 나중에 급을 높여 만나자'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북한의 공식매체들도 아직까지는 대남비방을 자제하고,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남측의 자세를 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게다가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9일로 정하고, 북한이 내부적으로 축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 전망의 또 다른 근거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북한 매체가 대남 비난 수위는 낮춘 채 미국만 공격하는 등 남북 모두 현 단계에서 긴장을 원치 않고 있다"며 "경색국면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한미 군사훈련으로 미군 병력이 전개된 상황에서는 북한도 대화에 나서기는 어렵다"며 "독수리 연습 종료 이후에는 고위급 접촉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순식간에 휘발성 강한 변수로 커지는 남북 관계의 특성상 모처럼 조성된 해빙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면 대화 재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우리 정부가 북측에 혼란스런 신호를 내보내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폐기에 관심이 더 큰 미국이 우회적으로 제동을 걸 경우에는 남북 관계가 급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의회조사국은 지난달 내놓은 '한미 관계'보고서에서 "박근혜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어디까지 동의해야 하는지가 주요 이슈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대북 인권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이 긴장 수위를 추가로 높일 경우 한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압박'과 '대화'의 편차가 큰 널뛰기식 대응을 하는 것도 문제다. 한 대북전문가는 "대통령이 남북 접촉 제의를 주문한 바로 그날 통일부 장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며 북한을 자극했다"며 "남북관계의 유동성이 큰 만큼 북측이 예측 가능하도록 정부가 일관된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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