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에 관여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모(61)씨가 국정원을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김씨를 비롯해 증거조작에 관여한 국정원 협력자는 최소 2명 이상이며,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국정원의 조작 지시나 공모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자살 시도 김씨의 역할은
탈북자 출신 중국 국적자인 김씨는 국정원의 요청을 받고 지난해 12월 중국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 명의의 답변서를 구해 온 인물로 알려졌다. 싼허검사참은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의 변호인에게 "유씨의 북-중 출입경기록이 '출-입-입-입'으로 기록된 것은 전산오류 때문"이라는 정황설명서를 발급해줬는데, 국정원은 김씨를 통해 "정황설명서는 정식으로 발급된 문서가 아니다"는 답변서를 구해 검찰에 넘겼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출-입-출-입'기록이 맞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다.
김씨는 지난달 28일부터 3차례 검찰 조사를 받으며 "싼허검사참 답변서의 문서와 관인을 위조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조사팀을 지휘하는 윤갑근 대검찰청 강력부장은 "진술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며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가 구해온 문서가 싼허검사참에서 발급 받은 것이라면 자살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더구나 김씨가 모텔 벽에 피로 '국정원'이라는 글씨를 쓰고, 국정원이 자신의 존재를 검찰에 알린 것을 원망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볼 때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협력자들의 진술 주목
앞서 검찰은 "(문서 확보에 개입한) 국정원 협력자가 수명이다"고 밝힌 바 있다. 김씨가 관여한 답변서 외에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유씨 중국-북한 출입경기록 확보에는 또 다른 국정원 협력자 A씨가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자살 시도로 외부에 존재가 알려졌지만, A씨 등 다른 협력자들은 극비리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A씨가 구해 온 유씨의 출입경기록(①번 문서)은 조작 의혹의 핵심에 있는 문서다. 이 출입경기록이 정식 발급됐다는 확인서(②번)와 싼허검사참의 답변서(③번)는 모두 ①번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문서다. ①번 문서는 유씨가 탈북 전 사용한 옛 여권 기록과도 내용이 다른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조작은 밝혀졌고, 이 과정에 개입된 사람의 진술과 관여자 확인만 남은 상태다.
때문에 국정원 협력자들이 검찰 조사에서 어디까지 털어 놓느냐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협력자들은 국정원에 대한 원망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져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국정원의 조작지시 여부 규명이 핵심
3건의 문서가 조작된 것으로 최종 확인돼도 국정원의 지시나 공모 여부를 밝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문서와 도장 위조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진 김씨가 국정원이 조작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정원은 공식적으로 함구하고 있지만 "조작이 있었다면 외부 협력자들의 소행이며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외국 공문서를 구할 때 대부분 외부 협력자를 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직원의 신분 노출을 피하면서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꼬리 자르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외교부를 통해 확보한 ②번 문서도 주선양(瀋陽)영사관을 거쳤지만, 국정원 파견 영사관 직원들이 외부 협력자의 손을 거쳐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협력자들이 국정원의 지시를 인정했다고 해도 국정원이 이를 부인할 경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의 사법처리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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