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간 불협화음이 통제불능의 지경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국가 주요 정책이 며칠 만에 뒤바뀌거나, 발표가 느닷없이 연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안에 대한 부처 간 이견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를 조율하기 위해 15년 만에 부활한 경제부총리와 경제관계장관회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다. 정부가 부처 간 협업을 강조하며 내세운 '정부3.0'은 이제 구호만 남은 듯 하다.
6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3일 오전 예정됐던 '개인정보유출 재발방지 종합대책' 발표는 연기됐다. 당초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안전행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합동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지만 "관계부처 협의 미(未)종료"라는 이유로 취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가 브리핑 4일 전 중요 일정으로 공지했다가 6시간 만에 취소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불똥은 당장 금감원으로 튀었다. 5일 예정된 정보통신(IT) 감독 부문 업무설명회가 종합대책 발표 이후로 연기된 것. 금감원 관계자는 "종합대책에도 담긴 내용이라 앞서 발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안행부와 미래부 등이 내놓을 방안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 덜컥 발표하려다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상 초유의 카드 정보유출 사태로 범 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지만, 오히려 부처 간 업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드러난 꼴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세부 실행과제에 관련 항목도 재탕 나열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발표 내용 고치기로 국민들에게 혼선을 일으키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3개년 계획은 발표 당일 100대 과제에서 25개로, 다시 8일 만에 59개 과제로 조정됐다. '3개년 계획 1호 정책'이라던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역시 "집주인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한 책상머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7일 만에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또 한번 고쳐야 할 정도로 허점이 눈에 띈다.
부처간 상충되는 정책이 그대로 발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자동차 연비 조사를 놓고 벌어진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간 마찰은 자동차 업계와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제각각 국무회의를 통과한 산업부와 환경부의 상이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다. 온실가스 감축 및 전력수요 전망은 해당 부처가 협의까지 거쳤다고 하니 정책결정 과정이 어디서부터 고장 났는지 진단하기조차 쉽지 않다.
현 부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전보다 협업이 잘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일선 부처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모 부처 관계자는 "대통령 뜻에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현실과 맞지 않는 내용들이 3개년 계획에 잡히기도 했다"라며 "시간에 쫓겨 할당량 채우듯 모은 대책들의 조합을 협업의 결과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새 정부 들어 경제부총리로 높아진 기재부 장관의 위상에 맞춰 15년 만에 격상한 경제관계장관회의는 2년이 돼 가는데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봉급생활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3일 만에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를 받고, 세부담 증가 기준(연 소득 3,450만원→5,500만원)을 바꾼 세법개정 사태 이후에도 개선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책상에 앉은 아마추어 경제사령탑"이라는 얘기마저 나온다.
정부는 강력한 협업을 위해 월 4회 경제관계장관회의 중 1회를 경제혁신장관회의로 운영한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제대로 굴러갈지는 미지수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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