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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열사 헤이그 출국하기 이틀 전 국채보상운동 모금 독려편지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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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열사 헤이그 출국하기 이틀 전 국채보상운동 모금 독려편지 발송

입력
2014.03.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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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당시 '고령금연회'는 경북 고령 지역 성인 남성들이 담배 사 피울 돈을 아껴 성금을 모으는 단체였다. 여성들도 질세라 쌀을 아껴 성금을 모으는 '절미회'를 결성했다. 고종 황제의 밀사였던 이준 열사는 헤이그로 출국하기 이틀 전 고령의 국채보상운동 단체에 모금을 독려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채보상운동이 나눔과 기부를 통한 독립운동이었다는 자료들이 대거 발견됐다. 한국국학진흥원은 6일 경북 성주와 고령에서 기탁받은 옛 문서 등을 분석한 결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국채보상운동의 진면목을 발굴, 일제의 자료와 신문에 주로 의존했던 연구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진흥원에 따르면 이 자료는 한말 유학자였던 홍와 이두훈(1856~1918) 선생의 후손인 이진환 전 고령군수의 소장품으로, 국학진흥원이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수행한 '2013년 개인소장 비지정 동산문화재 조사사업' 과정에서 발굴됐다.

이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자료는 이준 열사의 편지와 금연회 결성 경위 등 고령, 성주지역의 국채보상운동 전개과정이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의 대동광문회에서 시작, 서울의 국채보상기성회와 국채보상중앙의무사 조직 후 전국으로 확산된 독립운동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7년 4월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가 만들어졌고, 국채보상연합회의소도 발족됐다. 같은 해 7월 경북에서는 총합소의 유기적 연락기관으로 경북각군국채의무금수합소(慶北各郡國債義務金收合所)가 결성됐다. 이 수합소는 담뱃값을 아껴 빚을 갚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대구단연상채소(大邱斷煙償債所)와 함께 서울의 총합소를 연결하는 경북 지역 국채보상운동의 지도기관이 됐다. 이를 기점으로 일제에 진 빚을 갚기 위한 민족적 모금운동이 경북 지역에도 들불처럼 번졌다.

대구단연상채소는 나라 빚을 갚기 위해 고령군에 단체를 결성하도록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1907년 1월 29일 발의에 이어 설립된 대구단연회,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 대구단연상채소 등은 각 군에 설립 취지서를 송부했고, 고령군에서도 단체결성을 독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고령군은 같은 해 3월 4일 발기문을 띄우고 나흘 뒤인 8일 고령군단연상채회를 설립, 이두훈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같은 달 15일 고령군단연회는 대구단연회에 보상금 수합의 규칙과 장정을 요청했고, 이후 고령군도 의무금을 모집했다. 경북도내 여러 군도 대구단연회의 영향을 받았고, 각 군에서 거둬진 의연금은 대구단연상채회가 수합해 관리한 정황 등이 이번 자료에 잘 나타난다.

학계에서도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이었던 대구와 경북 지역 각 군 사이에 모금을 독려하고 자금을 수합한 풀뿌리 방식의 모금운동이 이처럼 자세히 담겨있는 자료는 처음이라는 입장이다.

오용원 국학진흥원 자료관리팀장은 "이번에 홍와 종가에서 발굴된 국채보상운동 관련 문서는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하부의 말단조직인 각 군면동의 의연금 수합의 실체 및 수합 경위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라며 "앞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연구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임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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