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찾아온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현동 다세대주택의 33㎡(10평) 남짓한 반지하방. 난방을 하지 않아 냉기가 느껴지는 집에서 내복에 니트를 껴입고, 두꺼운 덧신을 신고 있던 서금자(78) 할머니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동장, 통장의 방문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반겼다.
17년전 위암으로 남편을 잃은 후 혼자 살던 서 할머니는 10년전부터 이혼한 큰딸(56), 손녀(19)와 함께 살고 있다. 10년 넘게 당뇨를 앓고 있는 딸은 경제 능력이 없어 식구는 늘었지만 수입은 오히려 줄었다. 서 할머니가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거리 청소를 하면서 매달 20만원을 벌지만 예전 공공근로(45만원)를 할 때보다 수입은 절반 이상 반토막났다. 아들 둘이 있지만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 IMF 외환위기때 실직한 큰 아들(53)은 제 입에 풀칠하기도 힘겹고, 둘째 아들(50)은 아이 둘을 키우느라 매달 15만원씩 용돈을 보내는 것도 벅찬 상황이다. 자녀가 셋이나 있는 서 할머니에게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되는 정부의 복지혜택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35만원. 서 할머니는 딸의 약값조차 댈 수 없는 막막함에 "하느님께 어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11년 서 할머니는 '귀한 손님'을 만났다. 서대문구의 '100가정 보듬기 사업'을 통해 후원자와 결연을 맺게 된 것이다. '100가정 보듬기 사업'은 서대문구가 2011년부터 자체적으로 도입한 복지정책으로, 서 할머니처럼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동 주민센터나 복지기관, 주민들이 추천하면 자격 심사를 거쳐 후원자와 연결해 주는 제도다.
후원자는 매달 30만~50만원을 지속적으로 후원한다. '100가정 보듬기 사업'을 통해 종교단체나 기업, 개인 독지가 등의 후원을 받아 삶을 지탱하고 있는 저소득 가구는 현재 210가구이며 누적 후원액은 10억2,900만원에 이른다.
가족이 있거나 근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지원 등을 받지 못해 정부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위기 가구를 돕기 위해 이웃들과 자치구가 발벗고 나섰다. 지난달 26일'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후 유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민간 복지자원과 연계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서대문구 외에도 용산구와 성동구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단'을 긴급 구성해 조사에 나섰고, 강남구는 복지 사각지대 위기가정 지원을 위한 민ㆍ관 협력체계인 '강남 더하기 행복지원단'과 비영리 재단법인 '강남복지재단'을 출범시켰다. 동작구도 구청 직원들이 저소득 주민들과 결연을 맺고 후원활동을 펼쳐온 '일대일 결연 희망나누미 사업'을 올해부터는 기상청, 동작세무서 등 지역내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300곳이 넘는 복지 사각지대 가정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이원조(33) 충현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은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씨는 "찢어지게 힘들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웃의 대부분은 지나치게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 때문"이라며 "기준 또는 자격이라는 책상머리 잣대를 떠나 시급한 위기 상황에 닥친 이웃을 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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