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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유머와 아이디어… 주방에 예술을 입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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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유머와 아이디어… 주방에 예술을 입혔네

입력
2014.03.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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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천재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음식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시도로 유명하다. 그가 대중화한 분자요리는 식재료가 가진 본래의 모양과 질감을 해체해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재조합한 음식을 말한다. 아드리아는 주사기에 넣은 망고즙을 염화칼슘 용액 안에 방울방울 떨어뜨려 구슬 모양으로 굳히거나 올리브를 갈아 액화한 뒤 달걀 노른자 같은 질감으로 변형한 (입에 넣으면 올리브 즙이 탁 터지는) 음식들을 '발명'함으로써 요리를 유희와 창조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

서울 중구 수하동 한국국제교류재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TAPAS: 스페인 음식 디자인'전은 세계에서 음식 문화가 가장 발달한 국가 중 하나인 스페인의 주방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를 순회 중인 이 전시에서는 타파스, 파에야 등 스페인 대표 음식을 비롯해 현지의 식탁과 부엌에서 사용되는 도구 190여 점을 선별해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음식을 즐길 것인가'에서 시작한 고민이 음식뿐 아니라 식탁과 부엌의 디자인까지 바꿔 놓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기획을 맡은 줄리 카페야는 "디자인은 음식의 조리를 더 쉽게 만들고 맛을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음식과 떼놓을 수 없는 분야"라며 "이번 전시는 창의적인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음식 문화 전반에 흐르는 창조성과 유머, 생태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디자인 5점을 소개한다.

효모 냄새가 폴폴~ 숨쉬는 접시

빵의 매력을 아는 이들은 제과점이 뿜어낼 수 있는 최고의 향기가 고작 모카번 냄새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빵이 발효되면서 풍겨 나오는 효모 내음, 은은하면서도 자극적인 그 향기는 우리의 눈 앞에 닭 가슴살처럼 쭉쭉 찢어지는 빵의 살결을 재현하며 가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디저트 요리사인 조르디 로카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이 틀림 없다. 그는 식욕을 극대화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접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떠올린 것이 바로 빵 반죽이었다. 디자이너 안드레우 카루자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밀가루 반죽 형태의 접시를 제작했다. 내부에 전자기기가 장착된 실리콘 접시는 마치 숨 쉬는 반죽처럼 꿀렁거리며 움직인다. 빵의 호흡을 느끼며 먹는 음식은 어떤 맛일까?

최저 임금 커플을 위한 초소형 테이블

한국에도 1인 가구가 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작은 크기에 더 많은 기능을 담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 디자이너 다니엘 간테스의 초소형 테이블은 이 고민에 작은 해답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최저 임금 커플을 위한 낭만적인 식탁 세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식탁은 길이가 1m가 되지 않고 폭은 겨우 15㎝ 안팎이다. 상판에는 피클 접시 하나 올리기도 벅차지만 대신 여러 개의 고리가 연결돼 있어 여기에 접시와 컵, 와인병, 꽃병까지 걸 수 있다. 반찬이 많은 우리나라 식문화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품 요리를 먹을 때는 시도해 볼만하다. 디자이너는 식탁 다리에 이젤 구조를 적용, 자칫 위태로울 수 있는 식사 시간에 안정감을 더했다. 다리와 상판, 고리를 쉽게 해체할 수 있으므로 야외 피크닉에도 제격이다.

새들을 생각하는 생태적 도마

빵을 자를 때마다 한 주먹씩 나오는 빵 부스러기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각종 튀김이나 전에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디자이너 쿠로 클라렛은 좀 더 생태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그가 디자인한 빵 도마에는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빵을 썰 때마다 나오는 빵 부스러기는 자연스레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도마 아래 연결된 깔때기와 튜브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집 바깥에 설치된 새 모이통에 안착한다. 굶주린 새들과 빵을 나눠 먹는 기쁨은 정신의 허기까지 채워주지 않을까.

최고의 올리브와 최고의 올리브유 병

올리브 얘기가 나올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는 어디인가? 그리스? 이탈리아? 의외로 올리브의 종주국은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세계 최다 올리브 생산국(전 세계 생산량의 약 40%)인 동시에 세계 최고 품질의 올리브를 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세계 최고의 올리브유 병이 스페인에서 나온 것도 이상하지 않다. 스페인 산업 디자인의 선구자인 라파엘 마르키나는 1961년 올리브유를 담는 유리병을 디자인했다. 삼각 플라스크에 뾰족한 주둥이를 연결한 이 병은 한 방울의 올리브유도 흘리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엿보이는 제품으로, "지금까지 나온 올리브유 병 가운데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후에도 수많은 올리브유 병 디자인이 나왔지만 뾰족한 입구를 통해 기름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투명한 용기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별도의 받침 접시가 필요 없는 마르키나의 병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눠 마시는 기쁨 또는 슬픔 - 포론

스페인 북동부 카탈루냐 지방에는 포론이라고 불리는 전통 와인잔이 있다. 둥근 플라스크 에 길고 뾰족한 주둥이가 달린 형태로, 입을 대지 않고 잔을 기울여 가늘게 뿜어져 나오는 와인 줄기를 입에 명중(?)시켜 마시는 특이한 잔이다. 그러나 명중시키기가 쉽지 않아 포론을 그린 그림이나 사진에는 늘 입가에서 흘러내린 와인이 턱 끝에 맺힌 모습이 동반된다. 영국의 문호 조지 오웰은 이 불편한 잔에 대해 "병실에서 쓰는 오줌통 같다"며 혐오감을 표시했지만, 포론의 유래는 개인 잔을 살 여력이 없는 가난한 가정에서 여럿이 위생적으로 와인을 마시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포론의 독특한 형태에 매료된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많다. 마틴 아수아와 제라르드 몰리네가 디자인한 꼬포론은 와인잔에 포론을 결합한 형태. 하나의 잔으로 혼자서 마실 수도, 여럿이 함께 마실 수도 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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