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고, 숙제만 남았다. 잔치는 지난달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 동계올림픽이고, 숙제는 2018 평창올림픽이다. 51억 달러(54조원)에 이르는 동ㆍ하계 올림픽 사상 최대 돈다발 공세에, 소치 올림픽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는 '초대형 이벤트 뒤에 남는 것은 재앙'(2월 9일자)이라며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서방 언론들의 단골메뉴다. 하지만 소치 올림픽조직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다.
해법도 내놨다. 소치 조직위는 올림픽 폐막 후 경기장 활용 방안으로 자동차 경주 포뮬러원(F-1)대회를 유치한데 이어, 2018년 러시아월드컵 축구장 개조 밑그림도 그려놓았다. 또 컨벤션 센터와 대형 물류센터 전환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대 골치거리는 신축한 2만4,000개 리조트 객실의 소화다. 하지만 이마저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통 큰' 결단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소치 현지에서는 푸틴이 내로라하는 러시아 갑부들에게 100여 채씩 '안기면' 간단히 해결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흘러 나왔다.
2월 한달 간 현장에서 지켜 본 소치올림픽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푸틴의 작품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포함한 글로벌 스포츠단체에서도 '절대 권력자' 푸틴의 지원이 없었다면 올림픽 철도 등 기반시설 조성과 5개 빙상 경기장을 한데 묶은 올림픽파크 건립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IOC조차도 전대미문 '규모의 올림픽'에 혀를 내두른 셈이다. 실제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은 "우리의 관심은 올림픽 개최 총예산이 아니라, 대회 운영경비"라고 선을 그었다. 서구 언론의 '고비용 돈잔치' 올림픽이라는 비난 예봉을 피하기 위해서다.
서구 언론의 러시아 흠집내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 오랜 동서냉전 구도 속에 러시아는 서방 세계 공공의 적이었다. 러시아도 공산주의 맹주로서의 지위를 모두 잃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반(反) 서방동맹 종주국으로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피겨 퀸 김연아의 '빼앗긴 금메달'에 대한 서구 언론의 일방적인 편들기도 께름칙한 측면이 있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 속셈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미운' 러시아를 난타하는 가장 훌륭한 무기로 작동했다. 마냥 박수칠 사안이 아닌 이유다.
반동성애법 제정이 빚은 인권 침해 논란과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 우려 속에서도 소치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서구 진영의 불참으로 반쪽 올림픽에 그쳤던 1980년 모스크바 하계대회의 악몽을 걷어내고 소치에서'100% 올림픽'퍼즐을 완성했다.
4년 후 바통은 평창이 이어받는다. 평창올림픽의 비전은 '새로운 지평'이다. 동계스포츠 저변을 아시아로 넓히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장 개ㆍ폐막식 콘셉트부터 걱정이 앞선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이번 소치까지 최근 3개 올림픽 개ㆍ폐막식의 콘셉트는 역사다. 세계를 호령했던 찬란한 자국의 역사문화를 무대에 올렸다. 평창은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강의 기적'이 후보에 오를 만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로 눈길을 끌어 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신 기자들의 평창에 대한 관심은 온통 남북분단과 이에 따른 안보 불안에 집중됐다.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스위스 산악연맹 관계자는 평창을 아예 평양으로 발음하기도 했다. 평창 조직위에서 들으면 매우 서운한 말이다. 하지만 평창과 평양이 함께 하는 올림픽이 되면 어떨까. 공동개최는 불가능하지만 북한의 참가로 평화메시지를 전파하면 그 자체만으로 평창올림픽의 레거시(유산)로 남는다. 북한 변수는 평창올림픽 리스크임에 분명하다. 애써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함께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88서울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면, 2018 평창올림픽은 '통일 대박' 원년이 될 수 있다.
최형철 스포츠부 차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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