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카페를 할 때였다. 전 주인에게 물려받은 갈탄난로를 사용했다. 함석으로 만든 연통은 은빛에서 회색으로 회색에서 갈색으로 색이 변해갔다. 이주일쯤 갈탄을 때다보면 연기가 잘 빠지지 않았다. 연통을 분해해 마포자루 끝에 걸레를 싸매 묶고 연통 안에 낀 찌꺼기를 긁어냈다.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에 일어나 갈탄난로를 피웠다. 난로 밑에 신문지를 구겨 넣거나 널빤지를 잘게 쪼개 넣고 석유를 조금 뿌리면 불이 잘 붙었다. 한 번 불이 붙은 갈탄난로는 잘 꺼지지 않았다. 이삼십 분 간격으로 갈탄을 넣어주면 되었다. 갈탄난로는 끄름이 나는 석유난로나 석유히터 실내의 공기가 뻑뻑해지는 온풍기바람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력이 일품이었다. 뻘겋게 달아오른 갈탄난로 곁에 앉아 있으면 오만가지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피곤한 몸이 풀려 한껏 날아오르는 기분이 되곤 하였다. 마른 건초 냄새가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갈탄난로의 가장 큰 단점은 피울 때와 갈탄을 넣는 시기를 놓쳤을 때 생기는 지독한 연기와 질식할 것 같은 냄새에 있었다. 새벽에 거리를 지나간 사람이라면 카페 창문으로 빠져나온 연통을 한 번쯤은 쳐다봤을 것이다. 그러고는 독가스 냄새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새벽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항의를 하기 위해 2층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냄새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아침이나 점심 저녁에 갈탄을 넣는 시기를 놓치면 상황이 달라졌다. 카페의 아래층에는 세 개의 식당이 세 들어 있었다. 제일 먼저 아래층 식당주인들이 반응을 보였다. 아래층에는 부추비빔밥집과 보쌈집과 복집이 있는데 대개는 보쌈집 아저씨가 대표격으로 들이닥치곤 했다. 그는 성질이 급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얼굴이 붉어지고 뒤이어 삿대질이 시작되었다. "정말 이럴 거야? 몇 번 주의를 줬는지 알아?". 그는 손님 앞에서 큰소리로 욕설까지 거침없이 쏟아놓고 스스로 민망해져서 슬그머니 나갔다. 그는 복집 주인아저씨보다 몇 배쯤 복이 터진 사람이었다. 아주머니 혼자서 식당 일을 도맡아하고 있었다. 그가 식당에 붙어있는 시간은 그를 아는 사람이 찾아오거나 식당 문을 열고 닫는 시간뿐이었다.
그는 겨울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 중에서도 특히 눈이 적당히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그의 머리엔 유별나게도 비듬이 많았다. 누가 붙인 별명인지는 몰라도 그의 별명은 그의 그런 모습과 잘 어울렸다. 그는 '조미료'로 불리고 있었다. 나는 겨울만 되면 아래층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먹어야 했다. 그건 그들의 원성을 무마시키기 위한 한 방책이었다. 언젠가는 친구들과 보쌈집에 갔는데 마침 조미료 회장님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조미료 회장님은 벌써 얼굴이 홍시가 다 되어 있었다. 살짝 손톱만 갖다 대도 즙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어렸을 적 얘기를 하는 걸로 봐서 그들은 고향 친구 같았다. 네 사람 중 양복쟁이 친구가 회장님께 넌지시 사업을 제안했다. "우리 힘을 합쳐 조미료공장이나 차려 볼까? 그동안 낭비하고 다닌 원료만 해도 엄청날 거야. 이제 그만 엄청난 재화를 낭비하지 말고 사업을 추진해 보자고. 투자할 게 따로 없으니 최소한 밑지지는 않을 거야. 그런 의미에 서 자 건배!". 그들은 기분 좋게 원샷으로 술잔을 비웠다. 그는 온몸이 붉은 물고기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밖을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 있었다. 얼음이 뒤덮인 저수지 얼음 밑에서 살아가는 돌연변이 물고기. 그는 얼음 밑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보였다. 그의 동작은 한 없이 느려서 슬로비디오를 연상시켰다. 눈을 깜박하는데도 족히 몇 초는 걸렸고 무슨 말을 꺼내는데도 몇 분씩 걸렸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예를 들어 내 몸 속의 간이나 위 폐 같은 거에 대해서도 나는 전혀 아는바가 없지 않은가.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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