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이산상봉 정례화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협의할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고 북한에 제의했다. 최근 잇따라 이산가족 문제해결 의지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 언급에 대한 후속 조치이나, 인도주의에 한정된 협상 의제에 북한이 얼마나 호응해 올지는 미지수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이산가족 적십자 실무접촉을 12일 판문점 우리측 평화의집에서 열자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왔다. 정부는 당초 이번 주 중 유관부처끼리 조율을 끝내고 주말을 전후해 이산가족 관련 제안을 북측에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3ㆍ1절 기념사에서 상봉 정례화를 공식 제의한데 이어, 4일 국무회의에서도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교환 등을 북측과 협의하라"고 지시하자 통보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할 협상 틀로 고위급 접촉이 아닌 적십자 실무접촉을 택했다는 점이다. 남북간 현안을 두루 논의할 수 있는 고위급 접촉과 달리 적십자 접촉은 의제가 인도주의 문제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우리 측의 여러 포석이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청와대와 북한 국방위원회 간 핫라인에서 이산가족 협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떠안을 부담을 감안해 협상의 격을 낮췄다는 분석도 있다.
북측의 반응은 이날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정부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우선 북한은 6일까지 예정된 키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를 연이어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키리졸브와 함께 진행 중인 한미 독수리연습도 내달 중순까지 계획돼 있어 이산상봉 협상을 무작정 수용하면 남측 요구에 굴복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또 북측이 인도주의 범주에 속하는 정부의 구제역 방역 지원 제안에 열흘 넘게 답변이 없는 점으로 미뤄 금강산관광 재개나 5ㆍ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쌀ㆍ비료 지원 등 정치적 반대 급부를 상봉 다음 의제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설 계기 이산상봉 개최를 '통 큰 용단'이라 표현한 만큼 침묵이 길어질수록 적십자 차원이 아닌 고위급 접촉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의제를 관철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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