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파업 투쟁을 이끈 활동가, 착취 당하는 대학 청소노동자, 북한의 고아원에서 자라 국가에 이용당하며 살아온 남자…르포 기사나 고발성 다큐멘터리의 취재 대상이 아닌 최근 출간된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들이 일시에 쏟아지고 있다. 저자는 청소년 소설 작가, 미국 대학 교수, 노동운동가 출신 출판인 등으로 다양하다.
(사계절 발행)는 청소년 소설을 주로 쓰던 박지리(29) 작가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쓴 첫 소설이다. 대기업의 노동자 정리해고,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자본의 노예가 된 대학 등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유머와 풍자로 꼬집는다. 암에 걸린 남편의 수술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대학 청소 노동자로 일하게 된 65세 여성 양춘단의 무구한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의 치부를 들춘다. 얼마 되지 않는 임금을 깎고 모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대학 미화관리 소장에 맞서 싸우는 청소 노동자들의 모습이 수년 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 대학은 한국 대학의 표본이자 사회 모순과 부조리가 집약된 곳이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해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던 주인공은 모든 일을 겪은 뒤 "왜 대학에 댕기기 전보다 대학에 댕기고 난 지금, 대학이란 데가 워떤 곳인지를 더 모르겠는 걸까"라고 씁쓸하게 자문한다.
(컬처앤스토리 발행)의 주인공은 쌍용자동차 파업투쟁을 이끌다 투옥된 한상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위원장과 김혁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이다. 문학 창작 경험이 전혀 없던 출판인 고진(52)씨가 친구 김혁의 삶과 생각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남긴 24권의 일기를 바탕으로 난생 처음 소설을 썼다. 2001년 대우자동차 농성 투쟁, 2003년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투쟁, 2009년 77일간의 쌍용차 파업 투쟁을 상세히 묘사했다. 노동운동의 한복판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삶을 정면으로 다룬 드문 소설이다.
스탠퍼드 교수인 작가 애덤 존슨(46)이 쓴 (아산정책연구원 발행)은 가수였던 어머니가 평양으로 호송되고 난 뒤 고아원에서 자라다 군인으로 발탁된 준도가 일본인 납치범, 미국 스파이 등으로 살아가며 겪는 일을 그렸다. 평소 북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작가가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참고하고 평양 여행과 탈북자 인터뷰 등에서 보고 들은 것을 토대로 북한 주민의 현실을 전한다. 작가는 말미 인터뷰에서 "북한이야말로 베일에 싸인 사회에서의 인간적인 측면을 본격 소설의 상상력으로 발견할 수 있는 최상의 장소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북한 사회 전체가 국가적 규모의 트라우마 내러티브라고 믿는다"고 했다. 존슨의 세 번째 소설인 은 지난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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