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시작할 때 누군가 제게 '전곡 연주를 마친 후 다른 사람이 돼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불 같은 정열을 절묘하게 절제해 표현한 베토벤의 음악세계와 닮은 고백이었다. 12년째 이어 온 베토벤 대장정을 마치는 피아니스트 최희연(46) 서울대 음대 교수의 말에는 흥분이나 감격의 억양이 없었다.
최 교수는 2002년부터 4년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연주회를 열었다. 2011, 2012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했고 지난해까지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 연주회도 마쳤다. 20, 21일에는 금호아트홀에서 일본 첼로 거장 츠요미 츠츠시와 함께 베토벤 첼로 소나타 1번 F장조와 3번 A장조, '모차르트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7개 변주곡' 등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연다.
최 교수는 "후련하기보다는 내 음악적 성장에 대한 뿌듯한 마음이 크다"며 "내가 집요한 게 좀 있나 보다"고 했다.
예고 재학 중 유학을 떠나 독일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 1999년 서울대 교수 임용과 함께 귀국한 그는 금호아트홀의 제안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시작한 2002년 당시를 떠올렸다. "늘 마음에 품고 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전곡 연주)이었지만 제게는 너무 일찍 찾아온 기회 같았어요. 선생님(독일 피아니스트 한스 레이그라프)의 지지가 없었으면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시 국내 연주자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이 오랜만에 열린 터라 연주홀을 가득 메운 객석의 기대와 긴장감이 아직도 기억 나네요."
최 교수에게 베토벤은 12년 간의 전곡 연주 프로젝트뿐 아니라 음악에 눈을 뜬 순간부터 평생 특별한 기억을 안겨 준 작곡가다. 최 교수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웠고, 집에 피아노가 없어 수강 시간 외에도 학원을 드나들며 연습했다. 잦은 학원 출입을 막기 위해 학원 선생님이 가면처럼 쓰고 그를 위협하던 게 바로 음악공책에 그려진 베토벤의 초상화였다.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 재학 시절의 최 교수에게 베토벤은 애증의 작곡가였다. "잘 쳤어, 하지만 그건 베토벤이 아니야"라는 평가에 당황하고 막막했다고 한다. "독일인이 말하는 베토벤이 무엇인지 연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죠. 베토벤 연구를 많이 하고 내공도 쌓인 곳이니까요."
대중적 인지도에 큰 욕심이 없는 최 교수는 베토벤 시리즈를 시작할 때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상업적 성공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응 속에 대장정을 마무리하면서 베토벤의 매력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고 한다. "베토벤은 서양 음악사를 아우르는 핵심 작곡가인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인기를 끌만한 요소가 많았어요. 생애 자체가 감동 드라마니까요. 연주회 때면 '최희연 때문에 객석이 찼는지 베토벤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기획자와 농담을 주고받곤 했죠."
최 교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뿐 아니라 베토벤의 실내악곡을 연주하면서 프레이징(분절법) 처리와 다성부 음악 구조의 이해가 좋아졌다"고 자평한다. "베토벤 사이클은 한 번에 끝낼 일이 아니다"는 최 교수는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미국, 독일, 스웨덴 등지를 돌며 두 번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을 시작했다. 가을에는 국내 작은 연주홀에서도 여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떠들썩하게 알리지 않은 작은 연주회도 모두 모여 제 내공이 됩니다. 이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로 또 한 번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어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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