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비호 아래 크림반도는 사실상 독립 과정을 밟고 있다. 남은 것은 러시아가 6년 전 조지아(당시 그루지야)처럼 무력으로 크림을 독립시키느냐, 유혈 없이 사태를 마무리 하느냐는 차이다. 이 과정에서 사태의 방향을 쥐고 나가는 것은 크림자치공화국 정부다.
지난 달 말 새로 임명된 친러시아파 크림공화국 총리 세르게이 악쇼노프(41ㆍ사진)는 4일 기자회견에서 "키예프(우크라이나 새 정부) 의회의 협상 제안에 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키예프의 권력을 합법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크림이 우크라이나에서 이탈할 가능성에 대해 "이 결정은 자치공화국 주민들만이 내릴 수 있으며 이들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다"며 "우리는 이들의 의지를 실행할 뿐"이라고 밝혔다. 크림공화국은 오는 30일 사실상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악쇼노프는 또 "(크림공화국내)일부 부대는 이미 크림 자치정부 통제 아래 들어왔으며 모든 군대는 크림 권력 즉 크림 의회에 복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체 국방부를 창설해 독립국가의 길을 확고히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우크라이나 새 정부도 이 같은 방향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중앙 의회는 이날 일부 의원들이 크림 의회 대표들을 만나 자치공화국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실무 그룹 구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개헌의 핵심은 크림 자치권 확대다.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악쇼노프다. 악쇼노프는 우크라이나와 접한 옛소련 국가인 몰도바 출신이다. 크림반도에 있는 심페로폴공병학교를 졸업한 뒤 2008년부터 이곳 러시아계 주민의 권리 옹호 활동을 벌여왔다. 2009년에는 러시아계 조직인 '러시아통일'을 이끌며 이듬해 크림 의회 의원이 됐다. 현지에서는 폭력조직과 연계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달 27일 총리로 선출됐지만 그는 자치공화국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거쳐야 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승인을 받지는 못한 상태다. 하지만 "정식 대통령은 야누코비치"라며 친서방파로 물갈이 된 우크라이나 새 정부의 승인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야누코비치는 반정부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러시아로 도망간 뒤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야누코비치가 지원을 요청해 크림반도에 군사력을 투입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악쇼노프 정부는 "러시아의 괴뢰정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듯 악쇼노프는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러시아의 부양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크림 사례가 (역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등으로)확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