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인근에 실전 배치된 군부대를 원대 복귀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무력 개입할 뜻이 없음을 밝히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강경 일변도였던 미국과 유럽도 이젠 러시아와의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위기로 치닫던 우크라이나 사태에 조심스럽게 협상공간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대화는 이제 시작일뿐, 우크라이나 해법을 두고 각국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유럽, 러시아와 긴급회동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은 4일 "나토와 러시아가 긴급 회동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특별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크림반도 무력 점거를 비판한 나토를 직접 만나겠다고 응한 것이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4일 서방과 러시아간 갈등의 중심에 놓인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상황을 감시하기 위한 군사감시단 30명을 조직했다. 대니얼 베어 OSCE 미국 대표는 "미국 등 15개국이 2명씩 파견해 감시단을 조직했다"며 "이들은 곧 크림반도에 들어가 광범위한 감시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OSCE 감시단 파견을 이끌어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과 러시아의 메신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메르켈 총리는 4일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결의안'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에 추가 파병된 러시아군 원대 복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직접 대화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고위관계자는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도 이런 내용을 갖고 대화 중"이라고 밝혔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메르켈 총리가 크림반도 위기를 끝내기 위해 서방과 러시아를 중재하는데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美 "우크라이나에서 대치 원치 않아"
미국도 대화의 분위기를 띄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4일 워싱턴 한 학교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는 서방과 러시아 모두의 친구가 될 여지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경제제재를 앞세우며 압박 수위를 높이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무력이 우크라이나 내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 재차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대화를 제의했다. 그는 "러시아가 긴장 완화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우방국가들은 러시아를 정치ㆍ외교ㆍ경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뭉칠 것"이라면서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대치를 원하지 않으며 러시아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합법적인 이익을 추구할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군사개입을 고집하면 서방과 함께 고강도 제재에 나서겠지만, 대화 테이블로 나온다면 얼마든지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다.
강온양면의 러시아
러시아는 대화를 모색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이 자국에 제재를 가하면 그에 맞대응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셰비치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여러 차례 미국에 '왜 그들의 일방적 제재가 문명적 국가 간 관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지'를 설명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이제 대응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박도 이어졌다.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가스 공급가 할인 혜택을 4월부터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인테르팍스통신에 따르면 알렉세이 밀레르 가스프롬 사장은 4일 "우크라이나 수입업체가 3일 '2월분 가스대금 완납 불가'를 통보, 체불액이 15억2,900만달러에 달한다"며 "더 이상 할인 혜택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와의 정상회담에서 가스공급가를 30% 이상 인하(1,000㎥ 당 400달러에서 268.5 달러로)해주기로 약속했다.
한편 중국은 푸틴 대통령에게 정치적 해결을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4일 밤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의 정세는 매우 복잡하고 민감해 지역의 정세와 국제적인 정세 전체가 연동돼 움직이고 있다"며 "러시아 측이 각 당사자들과의 협조해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끌어감으로써 지역과 세계평화 안정을 수호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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