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객에게 싱가포르는 스톱오버의 나라다. 몰디브로 가는 신혼여행객도, 호주로 가는 배낭여행족도 싱가포르를 '찍고' 목적지로 향한다. 짧게는 5시간, 길어봤자 하루를 싱가포르에 머무는 일정에서 스카이라인이 빛나는 야경과 명품 매장이 즐비한 쇼핑센터를 뛰어넘는 체험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도심의 알짜 '핫 스폿'이 가득해 그냥 지나치기는 아까운 일. 시간은 없어도 싱가포르의 속살 구석구석을 보고 싶은 욕심 많은 여행객을 위한 도심 여행지를 준비했다.
오후엔 차이나 타운과 아랍 스트리트
싱가포르에는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 등 다양한 아시아 민족이 섞여 있다.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정부는 각각의 민족이 거주할 동네를 지정해 놓았다. 그 결과 이들은 지역별로 나눠 고유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지금의 차이나 타운, 아랍 스트리트, 리틀 인디아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차이나 타운은 하늘을 찌를듯한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복잡하고 소란스런 차이나 타운의 호젓한 뒷길에서 언덕 길을 올라가면 차이나 타운의 숨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부터 심상찮은 클럽 스트리트와, 엥 시앙 로드에는 1층은 상가, 2ㆍ3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던 전통 가옥들이 있다. 레스토랑과 호프, 사무실과 빈티지 숍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맥스웰 푸드센터'까지 내려가게 된다. 다양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곳인데 특히 찬 닭고기를 밥에 얹어 먹는 치킨라이스가 유명하다.
차이나 타운이 중국인의 거리라면 아랍 스트리트는 말레이시아계 무슬림의 거리다. 아랍 스트리트에서도 무슬림 문화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지하철 MRT 부기스역 화장실이다. 변기 옆에 작은 샤워기가 달려 있어 흐르는 물로 뒤처리를 하는 이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싱가포르 최대의 이슬람 사원인 술탄 모스크에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무슬림이 많다. 그 아래 머스캣 스트리트에는 무슬림 식으로 돼지고기 등을 제외한 할랄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실크 및 바틱천, 스카프와 카펫을 판매하는 가게가 많다. 아랍 스트리트 지역에서 가장 독특한 곳을 꼽으라면 좁은 골목인 하지레인을 들 수 있다. 싱가포르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6, 7년 전부터 하나 둘 가게를 열었고 그 뒤 빈티지 옷 가게, 인테리어 소품 가게 등 재미있고 특색 있는 가게가 속속 가세해 지금은 트렌드 세터의 골목이 됐다. 노랑, 파랑, 빨강 등 원색을 칠한 작은 가게를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밤에는 맥주 한 잔과 야경
싱가포르를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권하는 대표 음식은 칠리 크랩이다. 매콤하고 달콤한 양념에 버무린 게 요리인데 '점보씨푸드'나 '노 사인보드' 등 칠리 크랩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은 늦은 밤까지 밀려드는 손님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 여행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클락 키에 있는 점보 씨푸드의 분점. 클럽, 레스토랑, 바가 늘어서 있는 강변의 테이블에서 야경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두 사람이 먹는데 게 1㎏이면 충분한데 바삭바삭한 빵과 볶음밥 등을 함께 하면 더 좋다. 가격은 한 사람당 40~50싱가포르 달러. 예약이 필수다.
저녁 식사를 마쳤다면 본격적으로 클락 키를 구경해 보자. 강변을 따라 현란한 조명이 빛나는 이곳에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많다. '레이디스 데이'는 수요일과 주말은 새벽 4시까지 영업하면서 엄숙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클락 키 가게들의 다소 비싼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싱가포르의 대표 맥주인 타이거 맥주를 주변 편의점에서 구입해 강변에 앉아 마셔도 좋다. 클락 키 지역은 싱가포르에서 야외 음주를 할 수 있는 드문 곳이다.
야경이라면 높은 곳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는 도심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마리나 베이에 들어선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의 57층 최상층 클럽 쿠데타는 싱가포르 최고의 야경 감상지다. 이 호텔을 유명하게 만든 최상층의 야외 수영장은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다. 수영장에서 즐기는 야경 감상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객이 이 호텔에 묵는다.
오전엔 정원 체험
'정원도시' 싱가포르를 체험하고 싶다면 가든스 베이에 자리한 '가든 바이 더 베이'로 향해보자. 2012년 개장한 가든 바이 더 베이는 최첨단 식물 테마 파크로, 야외 정원과 7층 높이의 돔 식물원 2개로 구성돼있다. 높이가 주는 아찔함과 인공폭포가 떨어지는 정원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식물원인데, 이곳을 둘러보면 정적이고 지루하기까지 한 식물원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관람에 2시간 가량 걸린다. 플라워 돔과 클라우드 포레스트 두 돔을 구경하는데 28싱가포르 달러. 오전 9시 문 열고 오후 9시 닫는다.
싱가포르=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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