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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6일] 아름다운 우리말

입력
2014.03.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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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정사, 즉 섹스를 뜻하는 우리말은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구어적 환경에서나 문학 작품 속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성교나 통정 같은, 건조하기 짝이 없는 한자어가 참으로 어색한 맥락에서 쓰일 뿐이다. 오래 전에는 '얼우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죽은 말이 됐다. 어찌 된 일인지 사라져도 좋을 '씹하다' 같은 비속어는 남았는데 말이다. 얼우다라는 말은 참 아깝다. 어감도 얼마나 그윽하고 예쁜가. 이런 말이 사라진 것은 우리말의 풍요로움이 사라진 것이다. 황진이의 시조에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가 있는데, 종장의 "어룬님"이 바로 얼운님, 즉 통정한 남자라는 뜻이란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말 '어른'도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성교한 자'를 뜻하는 '얼운이'가 '어룬이'가 되고 '어른'이 된 것이다. 즉 어른이란 섹스한 사람이라는 속뜻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에 섹스를 했다고 다 어른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른이란, 어른다워야 어른이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정신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또한 '얼운 님'을 욕망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존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얼우다'라는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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