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직접 제기하는 초강수를 꺼냈다. 외교 수장이 직접 나서 일본을 거세게 밀어붙이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잇단 도발이 우리 정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일본을 상대로 반성을 촉구하기 보다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우군으로 삼아 일본을 옭아매는 국제적 고립 전략을 구사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정부는 당초 4일부터 열리는 이번 인권이사회에 윤 장관을 대표로 파견할 계획이었으나, 중간에 갑자기 바꿨다. 양국 관계 개선을 주문한 미국 입장 등을 감안, 장관이 나서 일본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 때문이었다. 수석대표가 신동익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으로 바뀐 해프닝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3ㆍ1절 기념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우리를 자극했다. 박 대통령이 누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지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장관은 "우리 입장은 기존과 다름 없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적절한 수준의 호응을 기대한 우리 정부로서는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 선택은 정공법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4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향한 압박 강도를 높여 궁지에 몰아 넣어야 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법적 다툼이 불거질 수 있는 영유권 분쟁과 달리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고노 담화를 재검증하자는 일본측 주장이 부당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제사회도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며 "문제는 일본을 향해 어떤 카운터 펀치를 날릴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 조치는 올해 들어 부쩍 강경해진 대일 정책을 가늠케도 한다. 정부는 1월 독도 영유권 주장을 명기한 일본의 중고교 교과서 지침이 발표되자,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만행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는 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하는 한편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일본의 야욕을 지적키로 방침을 정했다. 따라서 윤 장관의 인권이사회 연설은 이런 방침에 맞춰 정부가 구체적 행동에 나선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맞춰 정부도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일본 문부과학성 부장관이 위안부 문제가 날조됐다는 취지의 망언을 하자 "고노 담화 부정을 선동하는 대중 집회에 직접 참석해 동조하기에 이르렀다"며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를 아베 정권이 인정해야 한다는 우리 정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역사 퇴행적 움직임에 강력하게 맞서면서, 일본이 먼저 성의를 보이고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상당기간 경색국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우리의 대일 조치는 타협보다는 경종을 울리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관계 개선을 위해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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