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압수된 증거물은 비밀장부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아닌 기말고사 시험지였다. 이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6월 19일 이 대학 교양 프랑스어 수업 기말고사 시험장.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시험지를 배부하던 중 한 학생이 갑자기 영어로 된 시험지를 요구했다. 시험 감독관이었던 불어불문학과 시간강사 A(49)씨는 거절했다. 100점 만점 중 35점이 한국어 지문을 프랑스어로 바꾸거나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문제였는데, 불어와 단어, 문법 등이 유사한 영어 지문으로 시험을 치르면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학과는 시험 전 미리 요청한 외국인 학생에 한해 영어 시험지를 배부하고 있다. 하지만 A씨는 "수업 담당 강사에게 이 학생이 미리 영어 시험지를 요구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고, 학생의 외모나 말투로는 전혀 외국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 학생은 어려서부터 미국 생활을 해 한국말은 잘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이 학생은 담당 강사에게 영어 시험지를 받지 못한 것을 이메일로 항의했고, 이 이메일 한 통에 11년간 이 학교에서 강의하며 우수한 강의 평가로 상을 두 차례 받았던 A씨는 직장을 잃었다. 학과장 B(57) 교수는 지난해 7월 1일 A씨에게 "영어 시험지 항의에 대해 불문과 전체 교수회의를 한 결과 당신을 강사로 제청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실상 해고 통보를 했다.
A씨는 "소명을 위해 나간 교무회의에서 '(강사 자리에서) 잘라버리겠다'는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A씨는 B교수와 교양 프랑스어 담당 강사 등 4명을 위계(속임수)에 의한 업무방해,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영어 시험지 배부는 일부 학생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고소 내용에 따라 경찰은 시험지를 제출하라고 학교측에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해 9월 학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시험지를 확보했다. 경찰은 지난달 11일 B 교수와 A씨를 대질신문하는 등 의혹 전반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이달 중순 일부 혐의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B 교수는 "A씨에게 소명 기회를 줬지만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었고, 학과 교수들도 강의를 주지 않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며 "폭언 폭행은 없었고 영어 시험지도 특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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