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맘 때면 대한민국은 군기 잡기가 한창이다. 늘 논란이 됨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일부 대학의 특정 학과이긴 하지만 끊이지 않는 신입생 군기잡기가 여전하다. 올 해는 '다, 나, 까'로 말하기에서부터 선배에 대한 인사법 등 학교생활 매뉴얼까지 공개돼 파장이 일기도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들의 연수과정에도 군기는 꼭 필요한 요소인가 보다. 대부분 기업들은 연수원에서 동기애라는 것을 강조하고 해병대 훈련과 같은 극기를 요하는 과정도 선호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떼를 지어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기업들은 신입사원들이 소리치고 악쓰며 땀과 눈물을 흘렸을 때 무언가 얻게 될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이 모습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회사 홍보 영상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대학이나 기업 모두 창의적 인재, 혁신적 아이디어를 지향하는 열린 조직을 표방한다는데 있다. 이런 이중적 행태가 촉발시킨 비판 여론 속에서 특징적 현상이 목격된다. 개별 기업이나 대학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군대문화를 성토하는 것이다. 군대문화는 곧 악습이라는 공식 속에서 난타를 당한다.
절대 복종이라는 것이 군대 이외 조직에서는 악습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군 경시 풍조, 아니 군대문화에 대한 지독한 스테레오타입 때문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그 어느 국가보다 안보가 중요한 우리나라에서 군대에 대한 경외는 고사하고 경시 풍조가 팽배하다는 것은 국민을 탓하기 이전에 군 스스로가 대국민 소통이라는 당면 과제에 너무 수동적, 보수적으로 대응해 오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군대문화는 실체에 비해 단순화되고 이색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군대문화의 부정적 측면만 강조되는 부당한 동일시 현상이 너무 오랜 시간 방치된 결과다. 다양한 역할과 가치가 존재하는 우리 군대만의 문화가 분명히 숨겨져 있음에도 말이다.
군대문화에 관한 냉소적 여론은 월터리프만이 말했듯 대중의 머릿속에 저장된 특정한 사고에 근거해 대상을 해석한 산물이라고 볼 때 실제와 다른 부분에 대해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하다. 군대문화에 관한 편견은 왜 형성된 것일까? 그것은 군대의 소통 방식이 수동적 성향을 갖기 때문이다. 방어적 소통은 오해를 해소하는데 한계를 갖는다. 오해를 끊어 내는 것은 수세적 항변이 아닌 공세적 소통이다. 공세적 소통이란 전후맥락을 따져 보는 것으로 자신들의 실체를 내부 소통으로 수렴하는 것, 국민의 머릿속에 그려진 군대의 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 이를 통해 군대문화에 대한 잘못된 정신적 표상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소통에 인색해서는 절대로 고착화된 편견을 해소 할 수 없다. 편견의 결과는 여러 상황에서 드러나고 있다. 내일 5,860명의 신임 장교가 배출되는 합동 장교 임관식을 앞두고 사관학교의 성적 산출 방식과 공사 수석 수상자 번복, ROTC의 학교별 순위제 평가 방식 폐지, 전투 병과 배정 등에 있어 성차별 논란이 연이어 제기된 바 있다. 군의 초급간부 양성을 위한 평가는 크게 야전형 정성 평가와 교과형 정량 평가가 적절히 융화되어야 한다. 오해가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도 있다. 성 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공군사관학교는 1997년 가장 먼저 여성 생도를 선발했고 이미 네 명의 여성 수석 졸업자를 배출했다. 2007년엔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이번 논란을 보면 군대는 당연히 남녀를 차별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만 키우고 마무리된 듯 하다. 이런 논쟁 이후 다시 조용히 마무리 짓는 것 보다는 오히려 양성평등을 통한 강군 육성의 비전도 보여주고 유관 부처와 협업을 통해 군대 내 성인지 정책 마련을 위한 소통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군대문화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국민 소통 방안도 필요하다. 이것이 군대다운 공세적 소통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 만연한 왜곡된 군기도 좀 섬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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