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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 "예술에 목숨을 걸 가치 있나요"

입력
2014.03.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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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개봉한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군복을 입었으나 총과 참호에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이 영화를 이끈다. 히틀러가 유럽의 각종 예술품을 깡그리 모았다가 패망을 앞두고 폐기 처분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한 임무에 투입된 미술전문가들이 스크린을 종횡한다.

미국의 미술 역사학자 프랭크(조지 클루니)가 전대미문의 특수 임무를 지휘하고 제임스(맷 데이먼)와 장(장 뒤자르댕), 리처드(빌 머레이), 월터(존 굿맨)가 부대원으로 활동한다. 프랑스 여인 클레어(케이트 블란쳇)는 결정적인 제보로 이들의 활약을 돕는다. 화려한 출연진이 나치를 상대로 '세기의 작전'을 펼친다니 2차 세계대전판 '오션스 일레븐'을 기대할 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럴싸한 서스펜스나 극적 연출에 무심하고 오락성으로부터 멀리 비껴 서있다. 메가폰을 잡은 클루니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완성도도 떨어져 실망스럽다. '굿나잇 앤 굿럭'(2005)으로 세련된 연출력을 보인 그 감독 맞냐는 의문은 지극히 합당하다.

그래도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다.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나타내는 장면들이 그렀다. 그 중 하나. 부대원 둘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며 '혁혁한 전과'를 올린 프랭크에게 국가와 이념과 자본의 명분을 내세워 수백만 명을 사지로 몰았던 정치인이 다그치듯 묻는다. "사람 목숨을 바쳐야 할 만큼 예술이 중요한가."

예 또는 아니오를 요구하는 이 폭력적인 질문은 문득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그리 멀지 않은 1950년대 할리우드를 덮친 매카시즘을 떠올리게 한다. 매카시즘은 숱한 배우와 감독을 '빨갱이'로 낙인 찍었다. 동료의 과거를 밀고하지 않거나 이념논쟁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많은 영화인들이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스스로 할리우드를 떠났고 주로 유럽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아스팔트 정글'(1950)의 감독 존 휴스턴은 아일랜드에, 찰리 채플린은 스위스에 삶의 뿌리를 다시 내려야 했다.

프랭크 일행이 잿더미가 될 위기에서 피카소의 그림 등 인류 유산이라 할 예술품들을 구해내도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이들이 나치의 금괴 100톤을 우연히 찾아내자 지휘부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법석을 떤다. 그 떠들썩한 소란 앞에서 예술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프랭크 일행의 사명은 초라해진다.

할리우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사업에 독소라 여기던 영화인을 몰아내는데 매카시즘을 활용했다. 그 반사이익은 전후 유럽 영화가 누렸다. 할리우드를 떠난 이들의 재능을 발판으로 유럽 영화는 전화를 딛고 회생 속도를 높였다. 줄스 다신 감독의 활약이 대표적이다. 프랑스로 망명한 뒤 그의 연출력은 만개했다. 그의 프랑스 범죄 영화 '리피피'(1955)는 '미션 임파서블'(1996)과 '오션스 일레븐'(2001)에 영감을 줬다는 평이 따른다. 코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매카시즘에 열광했던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역사의 아이러니다.

앞의 고압적인 질문에 프랭크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이 흘러 프랭크는 손자의 손을 쥐고 자신이 찾아낸 벨기에 한 교회의 문화유산 앞에 선다. 시대와 이념과 국경을 넘어 찬연히 빛나는 예술 작품에 그나마 목숨을 걸만 하지 않냐고, 이념과 자본에 광신하는 사람들보다 그게 좀 더 낫지 않냐고 조용히 묻는 듯한 장면이다. 너무 반듯해 시시하기까지 했던 '모뉴먼츠 맨'이 지닌 제법 묵직한 메시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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