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께 읍례." 3일 오전 사회자의 한 마디에 강당 가득한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아랫배에 모으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인다. 경북 영주의 동양대다. 강단에 선 최성해 총장이 "창학이념에 맞게 학교 생활을 하시겠는가"라고 묻자 학생들은 "삼가 받들어 준수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옛 말투에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사뭇 진지하다.
개교 20년을 맞이한 동양대가 9년째 입학식에서 집지(執贄) 행사의 전통을 잇고 있다. 선조들의 학당 모습을 재현한 집지 행사는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예폐(禮幣, 고마움과 공경의 뜻으로 보내는 물건)를 올리며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하고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다. 예물은 육포를 주로 사용했다.
이날 입학식 행사는 태극기와 교기 등을 앞세운 학군 기수단이 우렁찬 구호아래 최성해 총장과 교수진을 이끌고 입장하면서 시작됐다. 국민의례와 황종규 부총장의 창학이념 및 설립자인 고 최현우 선생 제언 낭독, 학교 홍보 영상물 및 학과 소개가 이어졌다. 학과 소개 영상에서는 일부 교수들이 코미디적 몸짓으로 환영하자 신입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집지 행사 차례다. 최 총장이 전체 신입생들에게 "선비정신을 계발하고 인류 문화 창달에 기여하시겠는가"라고 묻자 학생들은 "삼가 받들어 실천하겠습니다"고 정중히 대답했다. 조목조목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이어 신입생 대표 표유석(19ㆍ컴퓨터정보통신군사학과), 외국인 유학생 대표 엥흐오양카(20ㆍ여ㆍ경영관리학부ㆍ몽골) 학생이 최 총장에게 비단으로 정성스레 싼 육포와 사랑의 회초리를 건넸다. 최 총장은 학문과 인격수양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지필묵을 선물했다.
표씨는 "집지의 뜻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재현해 보니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학생으로서의 마음가짐이 저절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엥흐오양카씨는 "집지의 뜻을 설명을 듣고 나니 엄격했던 한국의 사제 관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며 "몽골 최고의 사립대학을 설립하는 게 꿈"이라고 옹골찬 포부를 밝혔다.
대학은 지식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양성을 위해 2006년 입학식부터 집지 행사를 도입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옛날부터 서당 등에서 학문을 배우려는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 경의를 표하는 절차를 밟았다는 문헌을 참고했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이곳 영주에 있는 영향도 있었다.
동양대는 또 매년 5월 성년의 날에는 전통한옥으로 지은 교내 현암정사에서 전통 성년례 를 거행한다. 성년이 된 남학생에게는 관을 씌우는 관례, 여학생에게는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통해 책임감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여기다 2005년 6월에는 스승과 동문 학생들에게 떡을 대접하는 전통 책씻이 행사를, 2006년 10월에는 조선시대 식년시 과거시험을 재현해 급제자에게 어사화를 내리고 말을 타고 시가행진하는 풍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축하공연으로는 재학생 선배인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한복 패션으로 크레용팝 등을 패러디한'우린 모두 동양맨'을 공연,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입학식에는 지난해 10월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상명 전 검찰총장이 첫 축사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1,194명의 동양대 신입생들은 이날부터 1주일간 글쓰기 및 영어테스트, 오리엔테이션, 심리검사, 성공적 대학생활을 주제로 한 특강, 영화상영, 수강신청 및 학과 안내 등 동기유발주간을 보낸다.
최성해 총장은 "대학은 학문은 물론 인성을 가르쳐야 하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집지의전통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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