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시달리던 박모(61ㆍ서울 송파구 석촌동)씨가 30대 두 딸과 함께 집주인에게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을 남긴 채 동반자살한 자살한 사건은 기초생활제도의 허점을 드러내는 한편 근로자의 고용안전망인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한계도 보여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한국사회보험제도 사각지대 대안마련을 위한 긴급좌담회'에서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사건은 퇴근 과정에서 다친 근로자가 실업으로 빈곤 위험에 놓일 경우 고용ㆍ산재 보험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는 1월까지 인근 식당에서 월 180만원 정도를 받으며 일을 하다가 퇴근길에 빙판길에 넘어져 팔을 다쳤다. 박씨가 식당일을 그만 두자 생계가 막막해졌고 박씨 가족은 어떤 구제혜택을 받지 못했다. 부양의무자(근로능력이 있는 30대 딸)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못됐고, 신청하지 않아 긴급복지지원(생계비 88만원900원ㆍ3개월)도 받지 못했다.
공적부조로 구제받지 못하더라도 박씨는 꾸준히 일을 해왔기에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았어야 했으나 이마저도 비껴갔다. 질병ㆍ부상 등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박씨는 240일까지 하루 최대 4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그러나 몸이 아파 4주마다 구직 중이라는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지 못해 박씨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다른 이유로 실직해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 질병이 생겨 구직노력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면 실업급여와 같은 액수인 '상병급여'를 받을 수도 있지만, 박씨처럼 처음부터 실업급여를 받지 않았다면 상병급여를 받을 수 없다.
산업재해보험도 도움이 안됐다. 이병희 연구위원은 "만약 박씨가 공무원이나 군인, 사립학교 교사라면 퇴근 중 부상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면 치료비와 치료기간 중 일을 못한 부분에 대한 휴업급여(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한다. 공무원의 경우 본인 승용차로 출근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퇴근중 지하철 계단에 내려가다 넘어져 부상을 입는 경우, 심지어 출근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다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하지만 일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산재보험법 37조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발생한 사고"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해 이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에서 9명 중 위헌정족수에 1명이 모자라는 5명이 위헌의견을 냈고, 국회에 '출퇴근 산재'를 인정하는 법이 올라가 있지만, 고용노동부는 관련법 개정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1인 이상 사업장까지 전 국민이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이런저런 규정 때문에 사각지대가 심각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부정수급자를 찾는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발굴해 혜택을 주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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