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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성찰부터 법·정책까지… 생명윤리학의 모든 것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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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성찰부터 법·정책까지… 생명윤리학의 모든 것 담았다

입력
2014.03.0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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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발달로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낙태나 존엄사처럼 잘 알려진 쟁점뿐 아니라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긴 고민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다양한 문제가 앞으로 더 많이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생명윤리학은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는 학문이지만, 한국은 불모지에 가깝다. 1980년대 초반 일부 의과대학에서 교육을 한 것을 효시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연구와 논의가 시작됐으나 아직 전문가도 책도 별로 없다. 생명윤리(Bioethics)라는 말이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나오면서 출발한 신생 학문임을 감안해도 많이 뒤처진 편이다.

이화여대 생명의료법연구소가 펴내는 비오스 총서(로도스출판사 발행)는 그래서 반갑다. '비오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생명 혹은 삶'을 뜻한다. 철학적 검토부터 관련 법과 정책에 이르기까지 생명윤리학의 모든 것을 조명하는 기획이다. 1차분 4권, 이 나왔다. 앞의 세 권은 외국 책과 논문을 번역한 것이고, 은 한국의 사례를 검토한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을 모았다. 2005년 설립 이후 생명윤리를 연구하는 국내 대표적 기관으로서 쌓아온 성과를 대중에 널리 알림으로써 사회적 논의에 불씨를 당기는 게 이 총서의 목표다. 학제적 연구가 필수인 영역인 만큼 철학 윤리학 의학뿐 아니라 법학 경제학 사회학 행정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앨버트 존슨 지음, 이재담 옮김)는 인도와 중국을 포함해 동서양 각 문화권에서 의료윤리의 오랜 전통과, 현대 의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명윤리학의 발전 과정을 검토했다.

(앨버트 존슨ㆍ스티븐 툴민 지음, 권복규ㆍ박인숙 옮김)은 현대 생명의료윤리학의 고전이다. 원서는 1980년대에 나왔다. '결의론'(決疑論ㆍCasuistry)은 윤리적 쟁점을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각 사례의 구체적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결하려는 기술을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오래된 방법론은 18세기 들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몰려 완전히 몰락했다가 20세기 후반에 부활했다. '무조건 어떠해야 한다'는 규범적 판단에 따라 선 아니면 악으로 보는 논리로는 오늘날 의학과 생명과학 현장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수정ㆍ최경석 편역)는 생명의료윤리의 원칙 중 하나인 자율성의 개념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루는 논문을 모았다. 환자 자신의 판단과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종종 공동체적 가치와 충돌하곤 한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할 새로운 개념과 패러다임으로 이 책은 '관계적 자율성'에 기반한 '공동체주의적 접근 방법'을 소개했다.

이 검토한 국내 사례들은 개인의 인권이나 의료정책의 공공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들이다. 예컨대 2008년 대법원 판례로 알려진 '유체 인도 소송'은 선친의 시신에 대한 소유권을 두고 전처 소생 아들과 이복형제가 권리를 다퉜지만, 똑부러진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의료 행위에서 정신질환자처럼 정신적으로 제약이 있는 사람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만성질환자에게 꼭 필요한 장기 이식 제도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등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과 제도로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한국에서 생명윤리가 전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계기는 2005년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불임여성들의 난자를 연구에 사용한 것이 생명윤리 논쟁을 일으켰다. 2009년에는 수 년째 의식 불명인 채 숨만 붙어 있는 할머니의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며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을 계기로 연명치료의 조건과 존엄사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오스총서의 총괄 책임자로 1차분 중 을 번역한 권복규 교수(이화의료윤리센터 소장)는 당장 코앞에 닥친 또다른 문제로 여러 가지를 꼽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의료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그중 하나다. 유전체의학을 이용한 맞춤의료나 질병 가능성을 미리 파악하는 유전자 검사는 개인의 유전 정보가 새나갈 우려가 있다. 인체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인체 증강' 신약은 그것을 살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점에서 또다른 사회적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 기억력을30% 올리는 약은 이미 나와 있다. 한국의 전체 부부 중 15%가 불임이다 보니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의 난자와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서 태어나는 아기가 매년 300명 정도에 이르지만, 관련 법은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권 교수는 "의학과 생명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비해 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별로 騙駭?고 지적하면서 "비오스총서를 통해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이 소수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 대중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저작을 번역하고 연구소가 자체 생산한 논문과 단행본을 펴낸다. 2차분으로 등 5권이 올해 상반기 안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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