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상·편집상 등 휩쓸었지만 작품상·남녀주연상 등 수상 무산'아바타' '라이프오브파이' 이어 물망에 연속 오르고도 쓴 맛"오스카상 혁신보다 인간미에 방점" 평'아메리칸 허슬' 무관 수모도… '겨울왕국' 주제가상 등 2관왕에
'그래비티'가 상을 일곱 개나 받았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노예 12년'이었다. 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8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은 '그래비티'를 '최다상 수상 패배자'로 만들었다. '그래비티'의 최우수작품상 수상 불발로 3D 영화의 저주가 계속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초반 분위기는 '그래비티'가 주도했다. 음향효과상과 음향편집상, 음악상, 시각효과상, 촬영상, 편집상을 연이어 받으며 기세를 올렸다. '노예 12년'이 최우수여우조연상과 각색상으로 반격했으나 수적 열세였다. '그래비티'는 알폰소 쿠아론이 최우수감독상을 받을 때까지 후보에 오른 상 모두(7개)를 휩쓰는 괴력을 발휘했다. 쿠아론의 감독상 수상은 라틴계 최초라 '그래비티'의 주도권을 더욱 확실히 했다.
'그래비티'의 첫 희생자는 샌드라 불록이었다. '블루 재스민'(감독 우디 앨런)의 케이트 블란쳇에게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뺏기면서 '그래비티'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블란쳇이 "불록이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모든 것이 나를 감동시켰다"고 소감을 밝혔으나 '그래비티'의 운이 이미 기운 뒤였다.
'그래비티'의 작품상 수상 실패는 지난해 3D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수상 결과와 비교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감독 리안)는 작품상 수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그래비티'처럼 감독상에 만족했다. 리안 감독이 동양계이기 때문에 나온 수상 결과라는 뒷말이 나올 만큼 논란이 일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3D 영화의 미학적 잠재력을 최대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3D 영화의 오스카 징크스는 2010년 '아바타'(감독 제임스 캐머런)에서 시작했다.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3D 영화 붐을 일으킨 '아바타'는 작품상 물망에도 올랐으나 캐머런의 전 부인 캐슬린 비글로의 '허트 로커'에 밀려 시각효과상과 미술상, 촬영상을 받는데 그쳤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3D 영화 '휴고'도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나 2012년 촬영상 등 기술 부문 5개 상만 수상했다.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주요 상 수상작은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영화가 아니었다"며 "강렬한 인간적인 이야기를 지닌 영화들이 사랑 받는 아카데미상의 전통이 여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우수남녀주연상 수상에는 이견이 없었다.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HIV감염자를 연기한 매튜 매커너히가 차지했다. 매커너히는 30일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삶에 대한 뜨거운 집념으로 7년을 산 론 우드로프를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20㎏ 가량 감량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연기가 흠잡을 데 없었다"며 경쟁자들을 칭찬한 뒤 관객들에게 "(론처럼) 그저 계속 살아내라"고 충고했다. 매커너히는 오스카 수상으로 로맨틱 코미디의 섹시 남자라는 이미지를 벗게 됐으나 이날 맥락 없는 수상 소감을 길게 늘어놓아 빈축을 샀다.
남우조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여장남자를 연기하며 매커너히와 호흡을 맞춘 자레드 레토에게 돌아갔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불가능을 살리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베네수엘라 같은 곳에서 투쟁하는 몽상가들을 우리가 오늘 밤 생각하고 있다"는 정치적인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첫 1,000만 관객 달성에 성공한 '겨울왕국'은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아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작품상과 남녀주연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아메리칸 허슬'은 무관으로 쓸쓸히 퇴장했다.
이날 시상식 사회를 맡은 유명 토크쇼 진행자 엘렌 드제너러스는 객석에서 배우, 감독들과 휴대폰 사진을 찍거나 피자를 돌리고 피자 값을 걷는 등 유쾌하고 허물없는 무대 매너를 선보여 호평 받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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