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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4일] 자루 지옥

입력
2014.03.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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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처분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망가진 전자기기,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 멀쩡하지만 쓸모를 잃었거나 싫증이 난 소형 가구, 오래 입지 않은 옷들에 책과 잡지들… 문 앞에 쌓아놓고 보니 한숨이 나온다. 겨우 몸뚱이 하나 유지하는 데 뭐 이렇게 쓰고 버리는 게 많은 걸까. 며칠 간격으로 처리하는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용 폐기물까지 셈에 넣으면 머리가 다 멍해진다. 이제껏 버린 것들을 한데 모아두면 얼마쯤일지 감도 안 잡힌다. 어떤 지옥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단테가 에서 그린 아홉 단계 지옥에 미처 포함되지 못한 또 다른 지옥. 자루가 하나 있다. 사는 동안 버린 물건들이 몽땅 담겨 있는 자루다. 그 자루를 바늘 끝에 올려놓아야 한다면? 굴러 떨어지게 될 바위를 산꼭대기로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혹은 그 자루 안에 담긴 것들이 바람 없는 공기 속에서 풍화될 때까지 머리에 이고 있어야 한다면? 거인 신 아틀라스처럼 말이다. 아틀라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패한 대가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지만 하늘대신 지구를 받쳐 든 조각상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죽은 다음 내가 짊어지고 있어야 할 자루가 아틀라스의 지구만큼 거대하지는 않을지. 쓰레기 지구를 하나씩 떠받치고 있는 영혼들이 둥둥 떠 있는 쓰레기 우주. 이렇게 버리며 살다가는 그 지옥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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