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조직'으로 불리는 미국 최대 로비단체 미국ㆍ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가 2일 개막하면서 워싱턴 정치인들이 바빠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경황이 없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3일 소화할 5개 일정 가운데 4개가 이스라엘 관련 행사다. AIPAC는 사흘간 열리는 이번 행사에 연방의원 536명 중 3분의 2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다. 총회에는 주제별 토론에 초청된 연사 약 300명, 또 50개주에서 온 AIPAC 회원 1만여명이 참석했다. 눈 폭설로 연방정부는 폐쇄됐으나 워싱턴은 AIPAC 행사로 더 분주해 보였다. 하지만 올해 AIPAC 총회는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착 가라 앉았다. 워싱턴 컨벤션센터의 개막식장은 빈 의자가 많아 썰렁했고, 박수소리만 간간이 나올 뿐 객석열기도 예년 같지 않았다. 비중 큰 인사의 참석도 많지 않아 언론 취재마저 뜸했다. 2년 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작년에는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이 행사에 왔다. 올해는 케리 장관과 유대인 출신인 잭 루 재무장관이 행정부 참석자의 전부다.
AIPAC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은 지난 1년 참패로 끝난 로비에서 드러난다. AIPAC는 반 이스라엘 경력의 척 헤이글 국방장관 지명자의 상원 인준에 반대했으나 그는 장관직에 올랐다. 미국ㆍ서방과 이란의 핵협상도 반대했지만 막지 못했다. 또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촉구했으나 오바마 정부는 무력사용을 거부했다. AIPAC가 1980년대 이후 로비력을 의회에 주력한 이후 가장 큰 참패다. AIPAC는 연 예산 7,000만달러, 상근직원 200명 이상인 로비단체로, 한때 상원의원 70여명의 지지서명을 하루에 받아내는 저력을 발휘했다. AIPAC의 힘은 친 이스라엘 정책 반대자들에 대한 응징과, 찬성자들에 대한 지원에 있었다. 이마저 워싱턴 정치가 정쟁으로 갈라져 통하지 않고 있다. 미국 여론도 국가이익을 훼손하며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에 반대한다.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점차 빼려 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해는 자주 엇갈리고 있다.
AIPAC 핵심멤버들인 워싱턴클럽에선 이런 상황에 대한 반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더 이상 의회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행정부 정책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AIPAC는 결국 몸을 낮춘 행보를 선택하고 있다. AIPAC는 앞으로 초당적 지지가 없는 정책은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계획이다. AIPAC 실무를 책임진 하워드 코어 사무총장은 "우리의 메시지, 우리의 임무는 이란의 핵 포기"라면서도 이런 방향을 확인했다. AIPAC를 이끌 새 의장은 민주당 성향에 뉴욕 출신으로 합리적인 로버트 코헨으로 교체됐다. 한편, AIPAC의 원성을 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을 하루 앞둔 2일 중동평화협상의 수용을 촉구했다. 그는 "협상을 거부하면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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