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1일로 3주년을 맞는다. 지진, 쓰나미, 방사능 물질 유출 등 3중 악재가 겹쳐 전대미문의 재난을 겪은 일본 열도는 아베노믹스에 힘입은 경기 회복과 함께 빠른 복구가 진행, 외견상 안정을 찾아가는 분위기다. 반면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며 힘겨운 날을 지내고 있다. 대지진 3주년을 맞아 사고 현장을 둘러봤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방사능 물질이 대량 유출되면서 후쿠시마현 후타바초, 나미에마치, 도미오카초, 오쿠마초 등 원전 반경 20㎞이내 주민과 대기중 방사선량이 높은 이타테무라 등의 주민 10만 여명이 지금도 외지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대기중 방사선량은 비와 바람 등에 쓸려 조금씩 낮아졌고,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제염활동으로 고향으로 되돌아 오는 주민들도 속속 늘고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남서쪽 반경 10㎞ 주변에 위치한 도미오카초 역시 이런 마을 중 한 곳이다. 방사선량이 다소 안정을 되찾아 일부 지역에 한해 주거는 불가능하지만 출입은 허용되고 있다. 후쿠시마 살리기 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 '후요도 2100'의 사토미 요시오 이사장의 안내로 28일 이와키시를 출발, 도미오카초 곳곳을 둘러봤다. 그는 원전의 공포와 경각심을 일반인에게 알려주기 위해 1,600여명을 상대로 원전 관련 스터디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먼저 도미오카역을 찾았다. 바닷가에 위치한 자그마한 시골 간이역으로, 역에서 내리면 금세 해안에 닿을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한국의 정동진역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역이지만, 현재의 몰골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시 이 곳에 밀어닥친 7m 높이 쓰나미의 위력에 역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앙상한 철골조에 매달린 역 표지판을 통해 이 곳이 과거 역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인근에 설치된 방사능 측정기는 시간당 0.389마이크로시버트(μSv/h). 도쿄 신주쿠(0.035~0.04 μSv/h)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역을 지나 마을로 접어들자 쓰나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주택과 건물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앞 미용실에 걸린 대형 벽시계는 2시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11년 3월11일 오후 2시46분부터 수분간 강진이 지속되는 사이에 시계가 멈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지진에 이어 7m 높이의 쓰나미가 마을로 들이닥쳤고,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쓰나미 공포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폭발과 함께 대량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다. 해안가 주민들은 가족들의 사체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마을을 등졌다. 해안가에서 떨어진 상가주민들은 쓰나미 피해를 면했다고 안도할 틈도 없이 뿔뿔이 짐을 싸고 피난차량에 올랐다. 시간도 마을도 멈췄다.
도미오카초를 북상하던 차량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7㎞ 떨어진 벚꽃명소인 요노모리로 향했다. 2,000그루의 벚꽃터널이 만들어내는 장관을 보기 위해 매년 4월 수만명의 인파가 북적대던 이 곳은 방사능 수치가 워낙 높아 더 이상 인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유령마을로 변했다. "삑삑삑". 방사능 측정기가 갑자기 요란하게 울렸다. 수치는 시간당 2.43 μSv. 신주쿠의 70배에 달하는 고선량이 검출됐다. 짧은 시간은 큰 문제가 없지만 장기간 이 곳에서 거주하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입을 수 있다. 불과 한달후면 이 곳의 벚꽃은 흐드러진 모습을 뽐내며 만개할 터,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마음의 봄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도미오카초처럼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에는 여전히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는 반면, 다무라시 미야코지 지구는 내달부터 마을주민들이 복귀가 가능해진 곳도 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서쪽 17㎞에 있는 미야코지 지구 주민 117가구 주민 358명은 원전 사고 이후 원전 반경 20㎞ 이내 지역 주민에게 내려진 피난지시에 따라 모두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다. 일본 정부는 제염작업을 통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방사능 수치를 낮췄다며 주민들의 귀향을 독려하고 있다.
28일 방문한 미야코지 지구는 외관상 사람이 거주하는 흔적이 뚜렷했다. 최근 이 지역에 폭설이 자주 내렸지만 집 앞마당까지 깨끗하게 제설작업이 돼있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다무라시 소방분소에 차려진 방사능측정기는 시간당 0.039 μSv로 신주쿠와 큰 차이가 없었다.
개와 함께 산책을 즐기던 주민을 만났다. 센다이의 한 대학에 다닌다는 사이토 미즈호는 "방사능 수치가 크게 떨어져 주민들이 복귀해도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 정부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을 위주로 제염작업을 실시하는 꼼수를 부린 것으로, 장기간 주민이 거주할 경우 건강이 우려된다며 제염작업을 다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무라시 관계자도 "주민들의 복귀가 시작되는 내달초까지 완전히 제염작업이 이뤄진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시인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는 다무라시를 포함, 7개 지자체 2만9,000여명에 대한 단계적 피난 지시 해제를 검토하는 등 귀향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도미오카ㆍ미야코지(후쿠시마)=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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