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유관순 열사와 하얀 각시탈 가면을 쓴 사람 수십여 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록(Rock) 버전으로 편곡한 아리랑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약 2시간 동안 인사동과 탑골공원 등 종로 일대를 행진했다. 행진에 참가한 일행은 저마다 '일본 사죄하고 가실게요, 느낌 아니까!', '역사왜곡? 옐로카드!', '역사 지워가는 일본, 책임 짊어진 우리'라고 쓰여진 대형 플래카드를 펄럭였다.
제95주년 3ㆍ1절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 100여 명이 진행한 '친일청산 페스티벌'이다. 대안대학 '청춘의 지성' 소속인 이들은 지난 5주 동안 일주일에 2~3회씩 모여 역사공부를 하고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하나다. 최근 고교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과 침략 미화ㆍ군국주의 부활 등 일본의 도를 넘은 역사왜곡에 분노해서다.
청년이 주체가 된 축제이니만큼 발랄한 이벤트들이 잇따랐다. 청계광장 한 켠에선 친일인명사전 애플리케이션 설치 이벤트를 비롯해 '친일잔재에 도시락 폭탄을 던져라'(친일파 이름 적힌 풍선에 다트 맞춰 터뜨리기), '분노의 기왓장 격파'('침략미화 일본 아베정권'등이 적힌 기왓장을 깨는 게임) 등 대학생들만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딸 지아(8)양과 게임에 참여해 미니 태극기를 상품으로 받은 유수연(39ㆍ서울 서대문구 대현동)씨는 "다른 3ㆍ1절 행사는 엄숙함을 강요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기도 하는데 대학생들이 진행하다 보니 확실히 유쾌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재미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어윤희ㆍ김마리아 선생, 식민지 검사의 길 대신 독립운동가가 된 홍진 선생, 항일투사이자 언론인이던 안재홍 선생 등 비교적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물품 판매 등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도 빼놓지 않았다.
기성세대로부터 역사에 무관심하다며 비판 받아 온 청년들이지만 이날 모인 20대들은 "우리에게 대학 입시용 역사만 가르친 건 오히려 기성세대 아니였냐"고 되물으며 "이제라도 직접 찾아가 배우고 참여하면서 역사를 바로 알고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되는 윤지원(19ㆍ청주대 일어일문학과 1)씨는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고교시절엔 대입용으로 역사지식을 암기하는 데에 그쳤다"며 "오늘 행진에 참여하면서 마치 역사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말했다.
노원용(19ㆍ건국대 자율전공학부 1)씨는 "3∙1절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했더니 왜 쓸데없이 취업에 도움도 안 되는 '정치적 활동'을 하느냐는 어른들이 있어 씁쓸했다"면서 "역사와 단절을 강요당한 청년들의 역사관이 아직까지는 안녕하다는 것을, 더 많은 청년들이 역사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오늘 행사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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