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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양성평등은 저출산 시대의 해법"… 호주·EU 여성임원할당제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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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양성평등은 저출산 시대의 해법"… 호주·EU 여성임원할당제 확산

입력
2014.03.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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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주요 상장기업이 가입한 경제단체 '호주경영협의회(BCA)'의 토니 셰퍼드 회장은 지난해 11월 약 12​0개 회원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 편지를 보냈다. '경제성장을 위한 행동을 시작하자'며 현재 20%에 못 미치는 고위직의 여성 비율을 10년 이내에 50%로 끌어올리는 계획을 수립해 알린 것이다.

그는 "남녀의 다양성이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주는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여성 활용을 경영과제로 설정' '성별과 무관한 인재 등용 풍토 조성' '실력에 따른 대우로 남녀 임금격차 타파' 등 여성의 활약을 늘리기 위한 10가지 구체적 행동지침도 전달했다.

주요 선진국들이 여성 임원 확대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회 진출한 여성들이 육아 출산 등의 문제로 도태되거나 능력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차별로 고위직에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를 개선하자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진국들은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로 인력활용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돼 여성 임원할당제에 더욱 적극적이다.

호주 여성 임원 50%에 도전

최근 여성 임원 확대에 눈 뜬 나라는 호주다. 셰퍼드 BCA 회장이 '여성 임원 50% 확대'를 내걸고 발벗고 나선 것은 개별 회사 차원의 대응으로는 여성 임원이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호주 대졸자의 60%, 직장인의 52.6%가 여성이지만, 호주증권거래소(ASX) 상장 주요 2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아직 17.6%에 불과하다. 2012년 ASX 200의 여성 임원 비율이 9.7%이었고, ASX 200의 60% 이상은 여성 임원이 아예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다소 개선된 것이지만 여전히 미흡한 게 사실이다.

연방정부도 2012년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에 여성 승진 보고를 의무화 하는 직장 양성평등추진법을 제정해 힘을 실어줬다. 토니 애보트 총리도 고령화 대비와 고급 여성인력 활용을 여성의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보다 충실하게 운영할 생각이다.

남성들도 나섰다. 호주의 최대 국영통신업체 텔스트라, 국영항공사 콴타스, 호주 3대 은행인 커먼웰스뱅크 등 주요기업의 남성 CEO 21명은 2010년 4월 '남자의 변혁 챔피언'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여성 리더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현 조직과 제도를 운용하는 주체가 남성이기에 그것을 바꾸는 것도 남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정보를 교환하고, 여성 임원이 없는 기업의 간부를 초청해 여성인력 활용에 대한 대화도 나누고, 모든 호주 기업의 대표에게 여성 임원 증가를 촉구하는 편지 15만통을 보내기도 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엘리자베스 브레데릭 호주인권성차별위원회 위원은 "강연 요청을 승낙할 때 청중에 여성이 상당수인지 확인하거나 여성을 위한 유연 근무제를 실시하는 지를 보고 거래처를 구분하는 남성도 있다"며 "남성의 열성적 지원 없이 여성의 사회진출은 진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성임원할당제 팔 걷고 나선 EU

유럽연합(EU)도 기업 임원의 성비 불균형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고위직 남녀 비율 균형을 맞춰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생산성과 회사 전체의 능률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사회 고령화에 직면한 EU는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를 경쟁력을 향상시킬 열쇠로 생각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여성 임원 할당제의 개척국가나 다름없다. 2003년 12월 어느 성별이든 이사회의 40% 이상이 되도록 하는 법률을 도입했다. 초기엔 기업에 자발적 참여를 요구했으나 실효성이 떨어져 2006년 1월부터 강제조항으로 바꿨다. 현재 모든 주식회사와 국영기업, 지방자치기업, 협력기업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EU는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 EU 차원의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는 2010년 9월 기업 임원진의 성비 불균형 문제를 집중 논의해 새로운 양성평등 전략을 채택했다. 후속조치로 비비안 레딩 EU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 2011년 3월 주요 EU기업 대표 및 사회 인사들과 만나 대화하고 '기업이사회 여성비율 제고 서약서(Women on the Board Pledge for Europe)'를 발표했다. 이 서약서는 EU 내 상장기업들이 퇴직하는 남성 임원을 검증된 여성 인력으로 점차 대체해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2015년 30%, 2020년 40%까지 높이는 데 자발적으로 참여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레딩 부위원장의 발표 이후 EU 회원국 사이에서 토론이 활발했고, 프랑스 독일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12개국은 2011년 12월 이 서약서에 서명했다. EU의회도 2011년 7월 실질적인 개선이 가능하도록 각국에 입법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회원국들의 실행 의지도 확고하다. 프랑스는 2014년까지 여성도 최소 이사회의 20%를 채우도록 하고, 2017년까지는 이 최소 비율을 40%로 확대키로 했다. 2011년 1월 나온 이 법안은 임직원 500명 이상, 최근 3년간 수익이 5,000만 유로(735억원) 이상인 상장기업 및 비상장기업에 모두 적용토록 하고 있다. 상법을 적용 받는 국영기업, 대학과 행정기관 등 공공단체도 법에 따라 똑같은 쿼터비율을 적용했다. 덕분에 여성 임원 비율이 12.3%(2010년 10월)에서 22.3%(2012년 1월)로 10%포인트 늘어났다.

이탈리아도 2011년 7월 관련 법률을 시행했다. 상장기업과 국영기업은 남녀 어느 성별이든 이사회 및 감사회 구성원의 최소 3분의 1이어야 한다. 3명 이상으로 구성된 이사회나 감사회에 모두 적용되며 2015년까지는 이 규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 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 1차로 4개월 내 이행 경고를 받으며 2차로 벌금(이사회 10만~100만 유로, 감사회는 2만~20만유로)을 부과하고 3개월 추가 이행기간을 준다. 그래도 이행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이사회에서 선출된 임원의 자격을 박탈한다.

스페인에서는 2007년 3월부터 양성평등 관련 조항인 헌법 75조가 발효됐다. 이 조항은 2015년까지 대기업 이사회 구성원을 어느 한 쪽 성별이 최소 40% 이상 되도록 권고했다.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제재는 없지만 도입 기업들은 '양성평등기업'으로 공인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EU 여성 임원 비율은 8.5%(2003년)에서 13.7%(2012년)로 개선됐고, 핀란드(27%) 라트비아(26%) 스웨덴(25%) 등은 20%를 넘어섰다.

여성 비율 높으면 실적도 좋아

경영컨설팅업체 매킨지앤드컴퍼니는 경영진의 남녀 성비가 균형 잡힌 기업의 2005~2007년 주가상승률이 동종업계 평균 보다 17%포인트 더 높았고, 영업이익은 평균보다 거의 2배 수준이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성비균형을 이룬 이사회가 위험 관리를 더 잘한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성비율을 맞추는 것이 시장을 더 잘 반영한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소비지출의 약 70%를 여성이 차치하는데 경영진에 더 많은 여성이 진출하면 경제활동과 소비자 선택에 더 넓은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고, 소비자 기호를 좀 더 반영해 제품 및 서비스 개발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

그러나 여성 임원할당제를 둘러싼 역차별 논란도 나온다. 여성 임원 비율의 목표치를 정해 이행할 경우 남성들은 단지 성별만을 이유로 내쫓기거나 임원을 맡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수십 년간 일하면서 체득한 풍부한 기술과 경험, 상황 판단 능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U 집행위원회 내부에서도 "여성 할당제는 임원직과 여성 인재들 간 불일치로 인해 EU의 많은 우수 기업들이 미국 여성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도 여성임원 할당제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첫 여성총재 카니트 플루그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을 끌어올리면 언젠가 역작용이 일어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의 베스 브룩 공공정책담당 부회장도 "주요 기업의 여성 CEO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나 그 방법으로 쿼터제를 도입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자신도 "쿼터제에 반대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승진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목표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도 "닛산의 여성관리직 비율이 2%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수치 목표를 도입해 현재 8%가 됐다"며 "목표를 설정해야 행동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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