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사람 끝까지 쫓고 칼 2자루 쥐고 휘두르기도범인 4명 사살·1명 체포이틀후 있을 兩會 겨냥한 듯… 시진핑 철저 조사 지시
1일 밤 9시20분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기차역 광장. 59세의 농민공 슝원광(熊文光)씨와 아내 천구이전(陳桂珍)씨는 일거리를 찾아 저장(浙江)성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시간은 2일 오전6시30분이었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전날 밤을 대합실에서 지샐 요량으로 미리 도착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운명을 가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까만 옷에 복면을 한 10여명의 사람들이 길이 40~60㎝는 됨직한 긴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다. 부부는 본능적으로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 광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이 통에 부부는 서로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천씨가 남편을 다시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부둥켜 안은 천씨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흐느꼈다.
사계절이 모두 봄처럼 따뜻해 '춘성'(春城)으로 불리는 쿤밍에서 1일 밤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 170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중국 북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독립운동 세력의 계획적인 테러라는 것이 당국의 발표다. 연간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ㆍ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앞두고 경비가 삼엄한 가운데 터진 일이어서 중국 전역엔 충격에 빠졌다.
신화통신은 1일 밤9시 쿤밍 기차역 광장에서 발생한 무차별 칼부림 테러로 2일 현재 모두 29명의 무고한 생명이 숨지고 140여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4명의 폭도를 사살하고 여성 1명을 붙잡았다. 이들 5명 가운데 2명은 여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철도 보안원 2명이 숨지고 경찰 7명도 부상했다. 한국인 관광객이나 교민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쿤밍시는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이 사건이 신장 분열 세력의 계획된 테러라고 규정했다.
목격자들은 복면을 쓴 괴한들이 검은 옷을 입고 기차역 광장과 매표구 등으로 들이닥친 뒤 긴 칼을 빼 노인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시민들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줘(左)모씨는 인민망(人民網)에 "이들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 등 뒤에서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 양(楊)모씨도 동방조보(東方早報)에 "괴한중엔 칼을 2자루나 꺼내 사람들을 해치는 이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국 인터넷엔 현장 사진들이 올라왔다. 역 광장 곳곳에 피를 흘린 채 흩어져 있는 시체는 당시의 참혹함을 증명했다. 희생자들의 사연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다. 왕위(王宇)씨는 어머니와 함께 쿤밍 여행을 마치고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賓)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중 변을 당했다. 괴한들을 보고 곧 바로 어머니와 함께 달아나려 했지만 어머니는 그만 의자에 걸려 넘어졌고, 결국 범인들의 손에 희생됐다. 그는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 자신의 불효를 탓했다.
시진핑(習近平) 이날 중국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철저한 조사와 법에 따른 엄벌을 지시하는 한편 희생자 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시 주석은 "정법기관들은 신속하게 전 역량을 동원해 이번 사안을 철저하게 조사한 뒤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 이러한 세력의 기운이 날뛰는 것을 때려 잡아야 할 것"이라며 "각종 테러 범죄 활동들을 매섭게 타격해, 사회의 안정과 인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치안 최고 책임자인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원회 서기를 현장으로 급파했다.
이번 사건은 양회 개막 이틀 전 발생, 이를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양회를 사회 각계 각층은 물론 한족 외에 55개 소수민족 대표들도 모두 참석하는 민주적 행사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신장위구르인들과 시짱(西藏)티베트인들은 중국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원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엔 제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의 상징인 베이징(北京) 톈안먼(天安門)광장의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앞으로 위구르인 일가족이 탄 차량이 돌진, 5명이 숨지고 40명 가까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한편 중국은 이날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의 보안 등급을 격상하고 베이징 시내로 진입하는 모든 외지 차량에 대해 검색을 실시하는 등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베이징 시내 곳곳의 경찰 병력도 증원됐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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