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상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한심하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최근 몇 년간 검찰은 숱한 사건들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해결사 검사' 등 갖가지 개인 비리에서 '검란(檢亂)'이니 '외압 혹은 항명 파동' 같은 내부 갈등까지. 하지만 요즘처럼 검찰 조직이 무기력하다 못해 지질해 보인 적도 별로 없을 듯하다.
2010년 일본에서는 오사카지검 특수부 검사가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본인은 물론 부장검사, 차장검사까지 줄줄이 구속되고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일본 검찰의 위상은 이 사건 이후 회복 난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굳이 이웃나라 사례를 끌어 오지 않더라도, 국가기관에 의한 증거 조작은 한 나라의 사법체계,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 범죄다. 증거 조작이 사실로 최종 확인될 경우 닥칠 후폭풍의 강도와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검찰이 조작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다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ㆍ인멸ㆍ은닉한 자는 그 각 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제12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이 국가정보원과 합심해 간첩을 잡아넣던 그 국보법에 걸려 국정원과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된다는 얘기다. 증거 조작이 '온전히' 국정원 차원에서 이뤄졌고 검찰은 '완벽하게' 속았다 하더라도, 검찰이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 국정원 사건에 유독 취약한 검찰 조직의 무능과 안일이 검사 개인이 연루된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엄청난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서 위기감을 찾아보기 어렵다니 놀라울 뿐이다.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사실조회 요청에 대해 중국 정부가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 3건은 모두 위조됐다"고 회신한 사실이 공개된 지난달 14일, 검찰은 밤늦게 브리핑을 자청해 "위조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중국측 회신 내용을 제대로 파악이나 했는지 의심스러운 대응이었다. 이틀 뒤인 16일 일요일 오후 2시간에 걸친 브리핑에서도 검찰 관계자는 "위조는 없었다"는 단정적인 언사에서 "지금도 위조 아니라는 거 믿고 있지만"이라는 기대 섞인 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날 저녁 늦게야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 사안이 검찰의 신뢰와 직결된다는 심각한 상황 인식 하에 유관기관과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위법 행위가 드러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검찰의 행보에서 '심각한 상황 인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외교부장관과 주 선양(瀋陽) 총영사가 국회에 불려 나가 정식 외교 절차를 통해 검찰에 건넨 문서는 3건 중 1건뿐이라고 밝힌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 대검의 감정 결과 같은 중국 관공서에서 발급 받았다는 검찰과 변호인측 자료의 관인이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상 정식 수사로 전환해야 마땅한데, 이마저도 미적대고 있다.
신임 검사들이 임관식에서 읊는 '대한민국 검사 선서'란 게 있다. 좀 거창한데 후반부만 인용하면 이렇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모두에게 엄청난 '용기'와 '따뜻함'을 바라진 않는다.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검사'만 돼도 좋겠다. 이 소박한 바람이 증거조작 파문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조직의 대동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피가 콸콸 새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데, 정작 검찰 구성원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희정 사회부장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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